살다 보면 그런 날 있잖아, 신기한 날들. 우연의 일치 같은 날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데 딱히 의미가 없다고 하기엔 좀 특이한 일들. 한 번은 아빠 제사를 간 날이었어. 엄마가 제삿상 앞에 앉아서 ‘하나 아빠, 가서 뭐해 나 좀 잘 먹고 잘 살게 해 줘. 살면서도 못 도와줬으면 가서 좀 도와줘야지’ 라며 농담 반 진담 반 푸념을 털었는데 갑자기 풍경이 ‘딸랑’하고 부는 거야. 그날은 기가 막히게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이었거든. 그날 들은 풍경소리는 그게 다였어.
또 하나. 내가 일곱 살 때 일이야. 내 생일에 가족들과 케이크를 불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야. 그래서 내 생일 전날은 항상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 그리고 23년 후에 나의 친할머니도 내 생일에 돌아가셔. 그래서 나는 내 생일 전날에 두 조부모의 제사를 지내게 된 거지. 글쎄 그게 무슨 의미냐고?
글쎄, 그게 뭔진 잘 몰라.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많지. 세상은 그런 거야. 묘한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달리 설명한 길은 없는데 꼭 내게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일들 말이야. 아빠가 꼭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 같았단 말이야. 조부모님도 내 삶의 무게들을, 아픔들을, 상처들을 다 껴안고 떠나신 거 아닐까? 난 그런 생각을 해.
세상에 가끔은 묘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던 날, 아빠의 제사 머리맡에서 엄마가 아빠에게 소원을 말하니 ‘딸랑’ 하고 풍경이 울리던 날이나, 아빠의 탈상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꿈에서 아빠의 방에 들어가 보니 모든 세간살이가 하나 없이 단출한 가방 하나만 문 앞에 놓여져 있던 꿈같은 것들은 우연이라는 포장을 하고 나타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도, 또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언니와 내가 동일한 시간 낮과 밤만 뒤바꿔 태어난 것처럼 내 생일에 떠난 두 번째 조부모의 소천 소식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내 삶에 하나의 매듭으로 남을 것이다. 오래 기억될.
– Life Project Age 30 <1화. 인생에 가끔은 묘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세상은 마법 천지지. 내가 울적한 날이면 우리집 고양이 햇님이는 내게 와서 종종 잘 때까지 지켜보다 가곤 해. 왜 지켜보냐고 생각하냐면, 내가 까무룩 하고 깊은 잠에 들 때면 조용히 발 밑을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거든. 끝까지 함께 해주진 않지만 마치 언니처럼 나를 돌봐주는 느낌이 든 단 말이야? 햇님이는 내 마음을 읽은 거야. 내 눈이 깊어진 걸 알아챈 거야. 슬픔의 냄새를 맡고 가라앉은 내 심장을 느낀 거지. 한낱 미물이라고 말하는 동물도 기운을 읽을 수 있어.
실은 고양이든 강아지든, 기린이든 코뿔소든, 천공을 가로지르는 알바트로스든 참새든. 내 방의 몬스테라든 고사리든, 소나무든 배롱나무든. 우린 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실은 우린 다 교감할 수 있는 거지. 호흡할 수 있는 거야. 느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거야. 실은 모든 생명은 다 그럴 수 있는 거지.
서대문 형무소의 미루나무 이야길 들어 본 적 있어? 중학교 때 견학을 갔는데, 난 그 미루나무밖에 기억이 안 나. 뭐냐면 두 그루의 미루나무를 비슷한 시기에 심었어. 그런데 하나는 사형소 안에 있고, 하나는 밖에 있거든. 밖에 있는 나무는 거목이 됐는데, 안에 있는 나무는 커보지도 못하고 새까맣게 죽어버렸어. 죽었다나 아니면 성장을 멈췄다나. 아무튼 중요한 건 제대로 잘 못 자랐다는 거야. 왜일까? 조국의 해방도 보지 못하고 죽은 열사들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어. 그 시대에 태어난 건 무슨 죄야? 그냥 죽었겠어? 얼마나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고문을 받고 죽었겠어? 그 마지막 마음이 어땠을까? 난 상상도 안돼.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억울함과, 원망스러움과, 들끓는 분노와 삶의 회한을 바라보며. 미루나무가 어떻게 살 수가 있었겠어. 어떻게 클 수가 있었겠어. 그러니까 산채로 죽어버린 거야.
우리 삶에는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아. 하지만 어쩌면 그건 당연한 거야. 우린 생명체고 생명체는 서로 교감할 수 있으니까.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우린 사실 다 연결된 거지. 어디까지가 너의 공간이고 어디까지가 나일까?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거야. 지금 내 눈으로 보이는 몸, 이 몸이 나고, 내 눈에 보이는 너! 그게 바로 너야. 너와 나. 그러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우라라는 말 들어봤지? 그 사람의 후광 같은 거. 그 사람 주변에서 풍기는 분위기. 에너지 같은 거 말이야. 그게 사실은 저마다 몸 밖을 벗어나 그 사람 주위를 감싸고 있는 거라면? 우린 어쩌면 다 연결되어 있는 거 아닐까? 우린 몸을 넘어선 존재야. 그게 사실은 진짜 우리라고 믿어. 긍정적인 사람 옆에 있어봤니? 마음도 곱고, 말씨도 곱고, 행동도 단정한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 져. 반대도 마찬가지야. 부정적인 사람 옆에서는 그 에너지를 참기 힘들때도 있지. 우리는 몸안에만 갇혀있는 존재들이 아니야.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존재지. 분위기, 에너지, 기운, 느낌. 그런 것들. 화난 사람은 말을 안해도 분위기로 화의 에너지가 느껴지잖아. 극도의 우울함, 분노, 좌절, 혹은 주체못할 기쁨, 환희, 넘치는 사랑. 다 느낄 수 있는 것들이야.
다시 말하면 난 그런 류의 ‘연결성’을 믿어. 과학으로 설명이 안된다고? 과학으로 어떻게 다 설명을 하겠어. 과학도 다 설명을 못하는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그래, 그렇담 네 안의 심장은 왜 뛰고 있을까? 네가 노력해서? 왜 태어날 때부터 죽지도 않고 뛸 수 있지? 그건 누구의 힘이지? 하나의 생명 속에 담긴 힘이라고? 그러니까 왜? 왜 뛰냔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건 너무나 많아.
삶은 결국 하나의 견해일 뿐이야. 세상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내가 무엇을 택할 것인지, 무엇을 볼 것인지를 우리는 아주 제멋대로 선택할 뿐이지. 적절한 근거라는 게 어디 있겠어. 그런 걸로 어떻게 생의 모든 이치를 우주의 원리를 생명의 섭리를 우리의 감정과 이 섬세한 감각을. 우리가 어떻게 다 하나, 하나,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고.
The world is a continual change.
Life is opinion
- Marcus Aurelius
그래서 다시 말하면 난 그런 마법을 믿어. 우리가 다 연결되어있고, 우리가 모든 것과 소통할 수 있다고. 우리가 삶을 생각대로 주무를 수 있고, 생각대로 살 수도 있다고. 실은 생은 그런 자유를 내게 허락하려고 해. 흐르는 대로 사는 삶. 들어봤니? 못 들어봤다면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봐. 네 맘대로 잘 안돼서 힘든 적 있지? 계획이 틀어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거나, 암튼 뭐 같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바람에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날들 말이야. 예를 들어 손을 베었어. 그때 베었구나, 생각하고 피를 닦고 밴드를 붙이고 넘어가면 돼. 왜 이따위야? 아침부터 왜 이래? 그렇게 해봤자 될 일도 안돼. 왜냐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네가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야. 에너지를 쓰면 결과가 일어나지.
뭔가 네가 마음을 쓰고 있다는 건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야. 프로젝트가 잘되야 돼, 돈을 많이 벌어야 돼, 공부를 해야 돼, 운동을 해야 돼. 모든 것은 에너지지. 그것들에게 에너지를 쓰는 거야. 그 에너지를 고민하고 주저하는데 쓰면, 정작 결정하고 행동에 써야 할 에너지가 모자라게 돼. 아무튼 이건 비슷하고도 다른 얘긴데, 결국 생은 에너지를 잘 쓰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다는 얘기야.
나무 같은 건데. 나무가 자랄 때 애쓰면서 자라는 거 봤어? 목련이 꽃을 피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 봤냐 말이야. 곡식이 열매 맺을 때 막 계획하고 스케줄러 짜고 타임라인 짜서 딱딱 몇 날 몇 시에 짠! 하고 열매 맺는 거 봤어? 자연은 극도로 효율적이야.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고의 열매를 맺지. 그게 바로 우주의 원리라고 생각해. 나는 나무라는, 목련이라는, 꽃이라는 각각의 소우주에 빗대어 이야기했어. 하지만 나 또한, 너 또한 하나의 소우 주지.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은 여기에서 시작돼. 삶의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결국 우린 다 하나다. 우리는 하나기 때문에 서로 교감하고 호흡할 수 있다. 우리는 우주의 부분인 소우주이기 때문에 우주의 원래대로 살아간다. 흐름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최상의 결과일 것이다. 이건 당연하지만 마법 같은 이야기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글쎄. 나도 몰라. 나 또한 변하는 생명체니까. 내 생각도 달리 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우린 모두가 변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고. 세상은 그걸 진리라고 불러. 난 때 때로 그걸 본질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가끔 난 그걸 ‘마법 같은 본질’이라고 불러. 왜냐? 내가 그걸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마법. 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