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연습, 이야기 연습
골목길 끝집에서
뉴스는 올 해가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여름이 될 거라고 부채질하였다. 도시 전체가 바캉스를 떠날 때 그는 골목길로 쏘다니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보고 있던 골목길 끝집, 대문이 열리자 부채질하던 식구들이 밖으로 나왔다. 선글라스로 햇빛을 가린 어른 둘, 그리고 어깨에 튜브를 낀 예쁜 아이, 모두 환한 얼굴로 자동차를 타고 붕 떠났다.
그 집 앞으로 그는 천천히 다가갔다.
담을 넘을 필요까지는 없다. 문틈으로 뾰족한 마음을 구부려 집어넣으면 그 정도는 쉽다. 현관문 역시 순했다.
거실을 휘이 둘러보았다. 여름 달력이 빨간 동그라미 네 개를 자랑하며 벽에 붙어있고, 망가진 물안경을 쓴 곰인형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돈이 될 만한 걸 찾아서 큰 방으로 그는 들어갔다.
서랍들이 야무지게 입을 크게 벌렸다. 반짝이는 것들을 죄다 꺼내니까 시무룩해졌다, 서랍들이.
다시 거실로 나왔다. 밖으로 잠긴 작은 방문에게 질문 하나 던졌다. 이 방문은 왜 이토록 무겁게 잠겨있는가. 대답이 없다.
잠겨 있는 문 앞에서 막막해지곤 하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자물쇠 밑으로 궁금한 마음을 구부려서 밀어 넣으니 오랜만에 잠을 깨고 기지개를 켰다. 들어갔다, 작은 방안으로.
한 구석에 메주 한 덩이만 한 할머니가 대나무 소쿠리 같은 등어리를 보이고 엎드려있다. 옆에는 공깃밥 하고 김치가 신문지로 덮여있었다.
건드려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아니 거짓말입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거의 무표정이었습니다. 너무 반갑게 맞아주어서 막 울컥했습니다.
할머니를 거실까지 나오도록 하였다. 시원한 물 한 잔 따라주었다. 과일도 하나 깎았다. 입에 넣어준 과일 한 조각을 다섯 번에 나누어 먹는 걸 한참 보았다. 벽에 붙어있는 달력에서 네 개의 동그라미들이 오물오물 여름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보니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여름을 피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안방으로 그는 들어갔다, 다시.
이쁜 옷을 가져와서 할머니께 입혀드리고 싶었다. 이쁜 모자를 씌워드리고 싶었다. 반짝이던 물건들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마다 서랍들이 다시 환해졌다.
할머니가 담겨있던 그 방문을 보았다. 텔레비전을 향하는 눈먼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 도시에 최초로 방문을 훔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다음날 뉴스에 나올지도 모르는, 저녁 어스름까지 할머니 곁에 머물던,
그는 골목길 끝집을 떠났다. 다른 집으로 가는지 하여간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그는 사라졌다.
할머니는 거실에 혼자 앉아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 벽에 있던 달력이 제 몸의 동그라미를 싹싹 지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