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사고 집도 짓고
빌린 땅에서 농사짓고 빌린 집에서 살던 우리는 귀농 오 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땅도 사고 집도 짓게 되었어요. 2015년도에 대출을 받아 논을 샀고, 2016년도 봄에 논에다 새 흙을 갖다 퍼부어 밭으로 돋우고 여름에 땅을 다지고 가을에 하우스 파이프를 꽂고 거름 넣으며 땅 만들기 작업을 했지요. 하우스 바로 옆에 땅을 더 놓게 돋우어 마당을 만들고 거기에 25평짜리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귀농 육 년 차가 되었을 때 우리는 예쁘장하게 지어진 우리 집에서 자고 밥 먹고, 우리 땅에서 첫 수확을 할 수 있었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이름으로 된 땅이 생긴 거예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순전히 농사 제대로 지어 보겠다는 똥고집만 가지고 고스란히 빚을 얻어서 말이에요.조금은 벅차고 조금은 기쁘고 하지만 조금은 두려웠어요. 이렇게 일을 벌려도 되는 걸까, 이제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 땅과 이 집을 벌어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김소월이 쓴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이라는 시 제목처럼 우리 보습 대일 땅이 생겨서 얼마나 좋던지요.
빚은 불어나고 농사는 맘대로 안 되고
그런데 새 땅, 새집이라 기분 좋은 날은 바람같이 풀썩 지나가 버렸어요.
새 땅, 새집에 들어갈 돈이 왜 그리 많은지요. 땅 사고, 땅 돋우고, 하우스 짓고, 집 짓고 나면 큰돈 들어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하우스 수막 설비를 위해 땅속 물을 퍼 올리는 관정을 판다고 천만 원 가까이, 하우스 비닐 씌우는 데 몇백만 원, 하우스 비닐 씌우고 났더니 하우스 안에 환풍기를 달아야 한다고 또 몇백만 원, 환풍기 달고 났더니 그쪽 땅이 바람 많이 부는 지역이라 바람 막는 방풍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해서 또 몇백만 원……. 마당에 지어 놓은 집 옆에 20평짜리 창고를 같이 지어놔서 집에는 더 들어갈 돈이 없겠지 싶었는데 창고 옆에 저온저장고를 만들어 놓아야 무화과 생과며 가공품, 나락 같은 걸 보관하기 좋다고 해서 또 몇백만 원. 그러니 땅 사고 집 짓는다고 빌렸던 돈을 훌쩍 넘어 또 다른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겨 버리더군요.
그래도 빚을 냈든 어쨌든 우리 땅이 됐으니 빌린 땅에서 농사짓던 것보다는 낫겠지, 빌린 땅에서는 무화과 하우스 세 동 농사를 지었는데, 우리 땅에서는 하우스 다섯 동 농사를 지으니 수확량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거고, 열심히 하면 빚도 차근차근 갚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요, 우리 땅에서 처음 수확한 무화과는 우리 간절한 마음을 영 듣지 못했나 봐요. 하우스 다섯 개 동 가운데 두 개 동에 벌레 피해가 생겨서 선별 작업을 하면서 삼분의 일 가량을 버려야 했어요. 당연히 수익도 기대 이하였어요. 땅이 안 맞아서 그런가 싶어 토양 검사도 하고, 친환경 약재도 쓰고 여러 방법을 써 보았는데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어요.
그해 겨울에는 남편이 무화과 농사가 끝나자마자 두 달 가까이 아주 심한 독감에 걸려서 애호박 농사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그냥 겨울을 지나 버렸어요. 저는 농사짓는 틈틈이 하고 있던 논술 원고 쓰는 일거리를 있는 대로 받아서 해야 했어요. 대출이자 갚는 것부터 걱정이었으니까요.
귀농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그래요, 귀농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일’과 ‘돈’이었어요. 일과 돈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려고 귀농을 했는데, 시골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돈 걱정과 일에 파묻혀 지낸다는 건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지요.
농사를 지어 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일과 휴식이 조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것, 농사꾼이라는 직업으로 그 정도만 소박하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 보니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이지 뭐예요.
농사일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농사일로 돈을 버는 게 참 힘들어요. 그러니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지요. 빌린 땅에 농사를 짓는다 하더라도 설비나 기계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고요, 초기에 큰돈을 투자해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가 쉽지 않아요. 작물이 제 뜻대로 잘 자라주지 않을 때도 있거니와 잘 자라도 제값을 못 받을 때도 많아요. 어쩔 수 없이 다음 해 농사를 짓기 위해 빚을 얻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돼요.
벼농사도 몇만 평은 농사를 지어야 수익이 나는데, 몇만 평 자기 땅으로 갖고 있는 농부들이 거의 없으니 땅을 빌려야 하고 쌀값이 워낙 낮으니 농사지어 빌린 땅세 내면 남는 것도 없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얘기해요. 게다가 벼농사를 지으려면 콤바인이며 트랙터 같은 비싼 농기계들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대출받아서 기계 사면 맨날 기계 고장 나는 것 고치고 기계 사느라 대출받은 돈 이자 갚기도 버겁다고요.
시설 작물은 몇만 평까지는 아니지만 땅 삼천 평 정도, 하우스 열 동은 해야지 일 년 생활비가 나온다고들 해요. 하우스 한 동에 매출액이 일천만 원 정도면 꽤 괜찮은 수준이라고 하는데, 하우스 열 동이면 매출이 일억이니, 매스컴에서 말하는 '억대 농부'가 되는 거지요. 하지만 일억 매출에서 농자재비, 인건비 등을 빼면 남는 돈이 오천만 원 될까 말까예요. 오천만 원이면 꽤 괜찮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천만 원이 한 사람 연봉이 아니란 게 함정이지요. 하우스 열 동 농사를 지으려면 일꾼을 부리더라도 최소한 가족 두 명에서 세 명은 달라붙어 일년내내 일해야 하는 걸요.
그런데 그 하우스가 대출받은 돈으로 땅을 샀거나 시설을 지은 하우스라면, 그래서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답이 없는 거지요.
더군다나 이것도 농사가 잘된 최상의 경우를 가정한 건데, 만약 태풍이라도 지나가거나 날씨나 병해충 피해를 입기라도 한다면 어떡하나요?
매스컴에서 억대 농부라고 시끌벅적하게 나올 때 보면 온실에 가까운 으리으리한 시설하우스를 갖추고 있거나 땅이 아주 넓은 경우가 많아요. 억대 매출이 나오려면 최소한 몇억 원 대 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걸 귀농하고서야 알았지요. 버섯 농사만 해도 초기 투자비가 사오 억 원은 한다고 하고, 파프리카 같은 건 칠억 원은 쥐고 시작해야 한다고 하고, 딸기 고설재배만 해도 한 동 시설비만 오천만 원 넘게 들어가요. 그래서 다들 대출을 받아 시작하지요. 귀농인 대상 정부 지원책 대부분이 대출을 낮은 금리로 지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들 하는 말이, 돈 없이 귀농하면 빚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는 거예요.
농사가 웬만한 사업 못지않지요. 때로 ‘청년 농부’라면서 부모님이 농사짓던 버섯 농장이나 부모님이 운영하던 소 축사 앞에서 사진 찍은 기사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까닭이에요.
물려받은 땅 없이, 빌린 땅에 농사를 짓는다거나 빚내서 산 땅에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우리 또한 저지르고 나서, 겪고 나서 알게 되었어요. 깨달음의 대가는 비싸고, 후회는 언제나 늦기 마련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