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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Jul 11. 2021

귀농 오 년, 몸은 지치고 마음은 꺾이고

들지만 힘내 보려 했어요. 무화과 하우스 세 동, 애호박 하우스 세 동, 거기에 우리밀 농사와 벼농사도 시작했어요. 벼농사는 돈이 안 돼서 다들 그만두는 판국인데, 진짜 농사꾼이라면 벼농사를 지어야 된다며 남편이 또 고집을 부렸어요.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면 볏짚이 필요하니 여차 저차 꼭 지어야 된다고요. 또, 벼농사 지은 논을 겨우내 놀리는 것보다는 밀을 심어 이모작을 하는 게 좋지 않냐고 해서 또 덜컥 시작했지요. 게다가 무화과는 농사짓는 것뿐만 아니라 판매에다가 가공까지 욕심을 냈어요.

무화과를 수확한 첫해에 도매시장에 물건을 내러 갔는데 열매에 노린재 피해가 있는 걸 보고는 경매사가 받아주지도 않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기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애써서 화학 농약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한 건 아무 소용 없고, 무조건 모양이 예쁘고 크기가 커야 된다고 하더군요. 맛이라도 보고 평가하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텐데 그저 겉모양만 보고 우리가 애써 키운 걸 이렇게 내칠 수가 있나 싶었어요. 그 일을 겪고 나서는 우리가 농사지은 걸 믿고 사 먹는 단골 고객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처음에는 알음알음 지인들에게 판매를 하기 시작하다가 홈페이지도 만들어 택배 판매도 시작했어요. 게다가 무화과가 워낙 무른 과일이다 보니 저장 기간이 짧은데, 날마다 생과를 전량 유통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남는 걸 가공해야겠다 싶어서 귀농인 대상 지원금으로 대형건조기를 사서 무화과칩을 만들었고, 무화과잼도 잼 가공공장에 의뢰해서 만들어 팔았어요.

그러니 일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게다가 말린 무화과며 무화과잼을 제대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그걸 실행할 돈은 없으니 마음은 얼마나 바빴겠어요? 그때 일기장을 펴 보니 아주 많이 지쳐 있었고, 아주 많이 울분에 차 있었네요.     




          

2016년 9월 어느 날 일기 집에는 언제 가요?     

솔이는 엄마 아빠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작업 농막 평상 위에 꺼내 놓은 침낭 속으로 쑥 기어들어가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요즘은 아이들을 농막에 데리고 와서 일을 한다.

새벽에 무화과를 따고 포장하고 택배사에 갖다주고

말린 무화과와 무화과잼을 만들기 위한 손질도 해야 한다.

무화과는 날마다 따야 하고, 그날 딴 무화과는 그날 바로 손질을 끝내야 한다.

무화과 따는 걸 하루라도 거르면 초파리들이 끓어서 안 된다.

무화과는 무른 과일이라 그날 딴 무화과를 하루 이틀 묵혀서 손질하는 것도 안 된다.     

무화과를 따서 그냥 공판장에 내는 걸로 끝내면 될 일을

생산자, 소비자 직거래를 해 보겠다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으니

주문받고 주문량 맞추고 하면서 애타는 일도 많지,

무화과 생과만 팔면 될 일을

썰고 말려서 담고, 씻고 닦아서 잼 공장에 갖다주고 스티커 붙이고 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 가는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지.     


아이는 “엄마, 언제 집에 가요?”라고 자꾸 물어대고

“조금만 더 있다가…….”

“이것만 끝내고 가자.”고 어르고 달래다가

급기야 “오늘은 집에 아주 늦게 들어갈 거야!” 하고 아이한테 버럭 화를 내고 만다.     


징징거리는 아이한테 버럭 화를 내고 나서는

무화과가 원망스러운 거다.

4개월 동안 날마다 우리를 꼼짝달싹 못 하게 하는 이 과일이.

그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원망스러운 거다.


남들처럼 쉽게 가면 될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도 해 보고 저리도 해 본다고 오종종거리고 있나 싶어서.     

누군가는 쉽게 ‘일이 그렇게 많으면 일꾼을 쓰면 되지.’라고 말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정말 남는 게 하나도 없게 되는

이 놀랍기 그지없는 농촌 현실.


무화과를 따기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집에 들어와 그냥 쓰러져 자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잠깐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 걱정 없이 잘 수 있는 적당한 노동과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쓰러져 자게 되는 미친 노동은 다른 것인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꿈꾸었던 농사일은 이게 아닌데.

땀 흘리며 일하되 쫓기지 않으며 쉴 수 있고

쓰러져 잠들기 전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마음의 겨를이 생겨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그 집은 어디쯤 있을까? 

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          





2016년 10월 어느 날 일기 에라잇지원사업같으니라고!     


올해 우리는 과일 가공 시설을 지어 과일 가공품을 직접 생산하려는 부푼 꿈을 안고 지원사업에 신청했다.

2번 신청했는데 2번 다 떨어졌다.

군 담당자가 얘기하기를, 우리는 기반이 너무 부족하단다. 

그래서 그랬다. “기반이 없으니까 지원받으려는 거잖아요!” 

    

농촌에서 이루어지는 행정도 대한민국 축소판이다.

땅이나 돈, 혹은 백이 있는 사람에게 지원 혜택이 주어지고,

가난한 농부가 아이디어나 기술, 재능을 인정받아서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길은 없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아이디어 하나 공모하는데도 땅 평수와 자본금과 부채비율,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여부까지 적어야 한다.     


공무원들은 지원 후 성과가 보여야 하니 당장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곳만 찾으려고 하고

그러니까 당연히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농가만 혜택을 받고

그러다 보니 지원받던 부자 농부만 계속 지원을 받는다.     


재벌에게만 온갖 지원과 혜택을 주기,

여러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보다 한 사람에게 몰빵해 주기,

수단과 방법이 어떻든 빨리 돈 많이 버는 걸 성공이라 평가하기.

그렇게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 돈 벌기를 권하는 대한민국.     


기반이 없어서 떨어졌다는 말보다 나를 더 열받게 했던 말은

“욕심내지 마세요.”란 말.

가난하면 꿈도 욕심이 되는 세상.     

뒤돌아서 ‘두고 보라고. 내 꼭 성공하고 말테얏!’ 이렇게 외쳐야 할까?

그 성공이란 또 결국 돈 많이 벌어서 증명해야 하는 거라면 어떡해야 하는 거지?

대한민국 도시에서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삶이 싫어서 맨땅에 귀농했는데 촌에서도 성공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한 달 뒤 일기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네요.               



2016년 11월 어느 날 일기 그래욕심내지 말자     


몇 달간 정신없이 바빴던 시간 틈에서

기대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마음도 복잡했다.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기도 하고 마음이 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성공한 억대 농부가 아니라 정직한 농사꾼, 자신의 삶이 즐겁고 행복한 농사꾼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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