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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과 촌장 Jul 11. 2021

귀농 칠 년, 열매를 버리던 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지어 보니

귀농을 결심했을 때 우리는 ‘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멋진 일이라 여겼고, 그래서 농부가 되기로 했어요. 농사는 몸을 움직여 일하니 내 몸에도 좋고, 맛난 열매를 거두어 줄 수 있으니 먹는 이에게도 이롭고, 땅을 일구니 세상에도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농사도 당연히 착하게 지어야 된다고 생각했지요. 우리에겐 농사를 짓는다는 게 친환경 농법으로 짓는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었어요. 

우리가 ‘무화과’라는 작물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 까닭 때문이에요. 다른 작물보다 병충해 피해가 적어서 친환경으로 짓기 좋다고 했거든요. 남편은 자연농법 교육에 이어 친환경농자재 교육, 그리고 2년짜리 친환경 마에스터 과정까지 마쳤어요. 남편이 교육에서 배워온 대로 또, 남들한테 들은 대로 이것저것 많이도 해 보았어요. 

한 번은 은행잎 끓인 물을 천연 살충제로 쓰면 좋다고 해서 동네 아는 동생의 친구 집에 가서 리프트 차까지 타고 올라가 은행나무 가지를 잘라 왔어요. 솥에 물을 붓고 은행잎과 은행열매를 장장 여섯 시간 넘게 끓였지요. 무화과 열매 속에 기어들어가는 총채벌레라는 눈에 뵈지도 않는 작고 고약한 벌레들을 없애 보겠다고 말이에요.




생선 액비를 만들겠다고 먼 도매시장까지 가서 냉동 생선들을 한 트럭 싣고 오는 일도 몇 번 했어요. 바쁜 농사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갔다 오는 바람에 저녁이 다 되어 액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생선 냄새는 나지요, 핏물은 뚝뚝 흐르지요, 해는 져서 잘 보이지도 않지요, 동네 고양이들은 생선 냄새 맡고 자꾸 모여들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친환경 유용 미생물과 미생물 밥이 될 설탕이랑 해초 가루까지 넣어 생선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기도 했어요.

어떻게든 벌레가 하우스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하우스 옆 창에는 방충망을 다 둘렀고, 하우스 안에 들어온 벌레는 들어오는 대로 잡으리라 생각하며 하우스 곳곳에 벌레 유인하는 끈끈이 트랩을 세워 두었어요. 

무화과나무를 심고 이듬해에는 공벌레들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어느 순간 확 늘어나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어요. 공벌레들은 열매에 직접 피해를 주진 않지만 무화과 잎을 갉아 먹기도 하고 가끔은 무화과 열매 터진 입구에 들어가 있기도 해서 선별하고 포장할 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몰라요. 가스 토치를 들고서 거의 일주일에 걸쳐 어두운 곳에 모여 있는 공벌레들을 불로 태워 죽였는데, 그렇게 해도 뭐, 공벌레 줄어드는 게 표도 나지 않아요. 반으로 자른 감자를 하우스 곳곳에 두었다가 유인해서 태워 죽여도 보고, 별의별 방법을 써 보다가 급기야 ‘오리 농법’을 써 보기로 했어요. 벌레 잘 잡아먹기로는 닭보다는 오리가 낫다고 해서 새끼오리 세 마리를 읍내 오일장에 가서 사 와서는 하우스 안에 넣어 뒀어요. 다행히 오리가 공벌레를 잘 잡아먹어서 공벌레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그런데 오리 몸집이 좀 자라니까 이놈들이 무화과 열매까지 먹어 버리는 바람에 퍼덕퍼덕 잘도 날아다니는 오리들을 겨우겨우 잡아서 닭장 안에 들여놓아야 했어요.

그뿐인 줄 아세요? 커피 찌꺼기가 벌레 기피제로 좋다고 해서 읍내에 나갈 때마다 커피숍에 들러 커피 찌꺼기를 받아 왔어요. 축축한 찌꺼기를 햇빛에 쫙 말려 나무 주위에 훌훌 뿌려 놓았고요. 자닮유황이며 자닮오일도 직접 만들었고 클로렐라 배양액도 뿌렸어요. 해충 포획기도 사 넣어 두었고 천적을 이용해서 벌레를 잡는다고 하우스 중간중간에 고추와 채송화도 키워 봤어요.      

풀어놓고 보니,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본 것 같네요.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썼는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나무도 아프지 않게 잘 자랐고 괜한 벌레도 달라붙지 않았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속상하고 맘 아프고 때론 눈물 흘렸다고 하면 그럭저럭 대답이 될까요?

이름도 얄미운 총채벌레랑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는데도 잘되지 않았어요. 총채벌레가 열매 속을 장난질해 놓기도 했고, 노린재가 열매에 침을 콕 박아 까만 점을 만들어 놓았어요. 급한 대로 친환경 농약도 보았지요. 화학농약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효과를 보겠거니 기대하면서 친환경 농약을 쳤는데, 한두 달이 지나서야 벌레가 좀 수그러드는 둥 마는 둥 했어요. 

화학 농약은 친환경 농약보다 더 싸고 효과도 좋지요. 화학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사람이 힘들어요. 제초제를 안 쓰려니 풀도 손으로 뽑아야지요, 약을 안 치려니 트랩이며 방충망이며 포획기며 손으로 다 달고 관리해야지요. 이런 시설을 갖추려니 돈도 더 들어요. 

몸이 힘들고 돈이 들더라도 수익이 높다면 괜찮겠지요. 그런데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보니 벌레 피해가 많아 관행 농법 농가보다 수확량이 확 떨어져요. 벌레 피해가 많으니 때깔 좋고 큰 열매도 나오기 어려워요.    



  


버리는 무화과가 더 많았던 날들

귀농 칠 년째 접어들었던 2018년도는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해였어요. 벌레 피해가 유독 심했어요. 바로 지난해에 하우스 다섯 개 동 가운데 두 개 동에 벌레 피해가 생겨서 선별 작업을 하면서 삼분의 일을 버렸었는데, 그해에는 버리는 무화과가 더 많았어요. 벌레 피해가 덜한 하우스가 한 동밖에 없고 나머지 네 개 동은 모두 벌레 피해가 많아서 선별 작업을 하면서 삼분의 이를 버려야 했어요. 아직까지도 그해 무화과들을 반 넘게 버렸다는 말을 입밖으로 꺼낼 때마다 울먹이게 될만큼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남편이 새벽 3시 반부터 일어나 헤드랜턴을 끼고 따면서 벌레 피해 의심되는 열매들을 다 버린 후에 출하하기 괜찮다고 나름 선별한 열매들만 작업장에 갖다 놓았는데, 제가 포장하면서 또 반 넘게 버렸어요. 포장 작업하는 네다섯 시간 동안 몇 번이나 눈물이 차올라 눈이 퉁퉁 부었어요. 

어느 날 아침에는 작업장에 방금 수확한 무화과 박스를 내려 놓고 하우스에 다시 무화과를 따러 들어간 남편이 작업장으로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작업장에 안 들어왔어요. 혼자서 눈물을 삼키다가 갑자기 ‘혹시 이 사람이 나쁜 생각을 먹은 게 아닐까?’ 싶어 헐레벌떡 하우스 안으로 남편을 찾으러 들어간 적도 있어요. 열매를 거두는 날은 농부에게 가장 기쁜 날인데, 열매를 수확하던 그해 가을은 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어요. 남편도 저도 가장 많이 울었고, 또 많이 싸웠어요.      

한 날은, 가공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을 가려내고도 버려야 할 열매가 몇 박스나 쌓여 있었어요. 내내 서 있다가 작업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택배를 갖다주고 작업장에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데 “친환경이니 무농약이니, 그만하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어요. 친환경 농법으로 짓는 게 참된 농사라 믿고 있고, 그 신념을 지키면 좋겠지만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에요. 

그렇게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어요. 열매를 따는 넉 달 동안 얼굴이 펴지지도 않았고 벌레 피해 입은 열매를 작업장으로 들고 들어오는 남편의 고집스런 얼굴도 보기 싫었어요. 그러다가 수확기가 다 끝나갈 무렵 남편한테 벼르고 벼르던 말을 하고 말았어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그럼, 친환경으로 짓지 말자고? 그건 농사짓지 말자는 소리인데?” 아, 고집불통인 이 사람을 어쩌면 좋아요.

그런데 마음속 거친 말을 내뱉고 나서 제속이라도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밤에 괜히 잠까지 뒤척이고서 다음 날 오후 늦게 문자 메시지를 하나 받았어요. 우리가 인터넷 직거래 판매를 시작한 첫해부터 철마다 잊지 않고 우리 무화과를 사 먹는 단골고객이었어요. “말린 무화과도 같이 보내주시고 매번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마트에서 사 먹는 거랑 비교 불가. 확실히 맛있어요. 껍질도 부드럽고요. ㅎㅎ 부모님께서도 너무 맛있다고 하시네요.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무화과는 껍질째 먹는 과일이니 믿고 먹을 수 있는 데서 사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단골로 이어 갈게요~. 일하실 때 고생 많으실 텐데 몸 건강히 지내세용!”

고객이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었어요. 벌레 피해 없는 열매 중에서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걸로 보내 드렸는데 마음에 들었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하고 마음이 탁 놓였어요. 그리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데’라는 말이 마음에 탁 새겨졌어요. 답장 문자를 보냈지요. “늘 믿고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올해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요. 응원해 주시는 마음 받아 더 열심히 농사지을게요!”

정말로 모든 근심이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어요. 사실은 아주 대단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던 거지요.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났어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우리를 믿어 주는 고객이 있고, 우리가 고생할 거라고 걱정해 주고 몸 건강하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물론 그런 응원이나 칭찬이 농사 수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곧은 신념만으로 생계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요. 

아직도 우리는 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이라는 생각에 변함없어요. 농사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만 하다면 우리 생각을 지키기 힘들지도 몰라요.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던 농촌 현실 한가운데서 우리가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어요. 농사를 지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우리가 처음 가졌던 생각을 잃는다면 모든 게 흔들린다는 거예요. 농사꾼이 되어 농사로 밥만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꾸 더 큰 돈을 벌려고 하니 더 힘들어지는 거라고요. 빚 내서 땅도 사고 집도 짓고 보니 농사지어 버는 돈이 더 많아져야 하네요. 그런데 생각만큼 농사는 잘 되지 않고요. 

다른 일들은 하면 할수록 그 일을 더 잘하게 되는데 농사일은 그렇지가 않으니 더 속이 상해요. 농사 오십 년을 지은 할아버지도 날씨가 안 좋으면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기도 하니까요. 농사를 도박과 같다고 하던 이야기들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처음 마음을 붙잡기란 정말 어려워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던 귀농 칠 년 차 그해 가을이 지나가 버렸다는 거예요. 그보다 더 힘든 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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