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오롯이 나이고 싶다.

이 세상 수많은 82년생 김지영과 83년생 S의 이야기-우리의 이야기

by 샷샷언니

모두들 많은 동감을 했다고도 하고

친정엄마는 내가 생각난다며 울었다고 하던 그 영화,

남편은 나보다는 자기 스스로가 생각난다던 그 영화.

페미니즘이라고 말도 많아서 '평점 테러'받았다던

그 영화.

많은 사람이 보았던

그 영화를 보았다.


" 82년 생 김지영"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피하던 영화다.




이유는 무언가 나를 대비시켜

우울해지는 것도 두렵기도 하고

간신히 간신히 감추어 ,

우겨 넣었던

감옥에 갇혀 있던

우울감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이유로

자신감을 얻어,

동감을 받았다는 이유로,

툭 터져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꽉 차 있지만 간신히 달래가며 얼러 가며

꾸욱 눌러담고 있는 감정들이

비집고 나와서 조금만 틈을 보이면

나를 집어 삼켜 버릴까봐서

피하고

피했던 영화다.


감상을 깨고 단도직업적으로 영화의 느낌을 말하자면

그렇게 페미니즘의 성향이 강하다고 느껴지지도,

뭔가 많은 은유를 담았다기 보다는

현실에 좀 더 일어날 뻔한 이야기로

그리고 다정한 남편의 모습은

오히려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라

영화 자체는 오히려 잔잔하다고 느껴졌다.


무언가 현실의 상황을 담아내기 위해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

조금은 뻔하기도,불편하기도 한

이야기라기보다 그냥 너와 나의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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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저 한 마디가 많은 내용을 포함한다고 할까.




원작과는 많이 다르게 대중의 공감을 가지기 위해 변형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는 서평가도 아니고 영화 평론가도 아니기에

평범한 83년 생의 S로 담담히

숨죽여 울지는 않았지만 가끔 남편과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 내었지만

의외로 담담히 보았다.


" ... 어머니! 저는 어느 학습지 김 팀장인데요."


" 네?누구 찾으..? 아 네 제가 회의 중이니 나중에 전화하시겠어요?"


아직도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내 이름 석자 대신 불리우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늘 날 당황스럽게 한다.


82년생의 김지영과 다른 점을 말하자면

나는 일을 하고 있고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워킹맘이다.


복귀하면서 아이를 시댁에 놓고 오면서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을 다니며

일을 하는 건지, 아이를 보는 건지, 내가 살고 있는 건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경계를 넘어 평탄히 내 자리를 쌓아놓은 대기업을 나와 외국계 자리로 승진한

독한 워킹맘.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근사하지도

자신감에 넘치지도

대단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성공한 팀장처럼,

밖에서는 항상


"대단하다"

"역시!"


라는 소리를 들을 지라도,

집에만 들어오면

아이를 보내느라 내 꾸밈은 뒷전이라

예전의 완벽하던 헤어와 화장은

지하철에서 때우기 일상이고

늘 운동하고 식단에 극도로 신경쓰던

나는 서서 밥먹는 것과 탄수화물의 노예가

된 것이 일상이다.


아이를 보아 주시는 시어머님 근처인 교외로 나온 탓에

운전하는 시간도 아까워 집에 빨리 오기 위해 이리저리 치이는 전철에서 해외에서 오는 전화를

교양 없이 받아가며

핸드폰으로 밀린 이메일 업무를 처리하며

허겁지겁 시간에 맞추어 달려오느라

숨을 허덕이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빨리 온다고 왔는데.


항상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죄인이 된다.


어린이집에 늦게 데리러 와서 죄송하고

시어머님께 늦게 와서 죄송하고


한 끼도 못 먹고 배가 너무 고파서

뛰어왔는데

오자 마자 아이를 씻기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손에 잡히는 데로

입에 쑤셔 넣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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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재워 놓고 나오면

내일 브리핑할 수 많은 자료와

끝 없는 빨래에

멍하니 손 놓고

펑펑 울었던.



시어머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늘 눈치 보느라 곧 체하고는 만다.


먼저 아이를 씻기고 있는

남편에게 늘 고맙지만 미안하다.


매달리는 아이랑 놀아주기 보다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 엄마 잠깐만 ! 이것만 해놓고! 아이 착해"

아이를 밀어낼 수 밖에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며느리-아내-그리고 엄마"

가 되어버리는...


순식간에 낙제생이 되어버리는

나라는 83년생 S가

지겹다.


매일 죄송한 내가

지겹다.




한 번도 살아가면서

낙오자나 모자라는 편은 아니었던 지라

부던히도 노력하면 모두 다 완벽해질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체력은 훨씬 떨어지고

일상은 지쳐갔다.


슈퍼 우먼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 역시 엄마가 키우는 게 제일인 것 같아요"


"아이의 표정이 확실히 달라진 거 같아요."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코로나 때문에 해외 출장도 없고 워낙 연차를 많이 쓴 까닭에

아이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많아져여서 일까.


나의 태양 같은 아이는

내가 복귀 후,

말이 유독 없고 느리다.


유독 요즘 아이가 많이 웃고 말이 많아진다.


엄마에게는 육아의 시간은 길어지고

업무는 업무대로 해야 하는데에

대한 무리는 있었을 지언정

전년에 3배 매출 신장으로 이루어낸 가파른 진급보다

더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아이와 못있어주는 죄책감에 대한 것이리라.


등은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잦은 물 적심으로 손톱은 다 갈라지고 부러지고.

(*아마도 업무로 날 만난 사람은 날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답답해서

남들은 다 번드르르 멋지다고 하는 자리조차

뻔해 보이던 그 때.

그 것보다는 무슨 의미인지 고민일 때.


하루만,
딱 하루만 쉬고 싶다.


하루.

딱 하루만.


끊임없이 울리는 업무콜과

육아와 '누구의 누구' 라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요즘 덜 바쁘기 시작하니 주변이 보이면서

생각이 유독 많았었다.


주말에 밥상 몇 번 차리는 게

즐거움에서 힘듦이 되던 요즘.

끊임 없는 빨래,청소에

짓눌리는 꿈에.


" 왜 나는 돈도 벌고

여러가지 모든 책임을 다 지어야만 하지 ?"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남 들 다하는 건데
유독 왜 너만
유별나.
힘들게 하나는 포기하던지.

미안하지만,

포기가 둘 중 무엇도 안되서

지치고 어러워지고

무언가 모를 당연한 일상에 대한 억울함에

잠식되어 가던 나.




영화가 끝나가자

나는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 감사하다.."


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이기 보다 아직은



S입니다.
내일 미팅 하고자 하는데요,
가능하실까요?"



'나'

내 이름 석자로 불릴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함을 가진다.




내 이름....


살면서 내 이름으로 얼마나

더 불릴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은,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아주 가끔은


아무 연결고리가 없는,

오롯이

나이고 싶다.


내 이름 석자로,


살아있다고 느끼고 싶다.





가끔은

오롯이


내 이름 석자로

83년생
S 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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