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2

나흘 동안 있었던 일

by 북남북녀


여자가 어린이집 현관에 도착했을 때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찢어질 듯한 아이 울음소리와 윤혜를 연결 짓지 못한다. 그래서일 거다. 현관 앞 원장실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윤혜를 봤을 때 여자가 깜짝 놀란 이유는. 같은 반 아이가 밀었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아 이곳에 뒀어요, 원장의 말 사이로 여자가 윤혜를 보니 볼 한쪽이 빨갛다. 빨간 볼 반대쪽으로는 긁힌 상처가 두 군데 있다.

짧은 머리 교사가 원장실 옆 교실에서 나온다. 점심을 먹는데 윤혜가 안 먹으려고 하니까 남자아이 한 명이 먹으라면서 달려들었어요. 여자는 편식이 심한 윤혜를 알고 있기에 아이가 점심을 먹지 않아 곤란했을 선생에게 죄송하다고 말한다. 윤혜가 편식이 심해요, 아이를 안는다. 원장은 짧은 머리 교사에게 빨리 가서 약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다. 어이구, 어떡하나 면봉에 묻힌 연고를 윤혜 얼굴에 발라준다. 여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우선 빨리 어린이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이를 안고 나오는데 짧은 머리 교사가 윤혜가 잘 적응하고 있어요, 다음 주부터는 낮잠도 재울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웃음이 많은 아이인데. 혼자 원장실에서 울고 있는 윤혜 모습이 여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윤혜는 울먹이면서도 초콜릿, 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슈퍼에서 초콜릿을 사서 아이와 놀이터로 향한다. 초콜릿을 손에 들고 그네에 앉아 있는 윤혜를 바라본다. 빨갛던 볼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으나 눈 밑의 긁힌 상처는 여전하다. 여자는 점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지금 좀 와야겠어, 아무래도 시시티브이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


검은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놀이터로 들어온다. 윤혜가 아빠,라고 소리친다. 네 말은 알겠는데 확인한 후에 윤혜가 다시 어린이집에 다니기가 껄끄러워질 수 있는데. 뱃속에 아기가 발로 차서 여자는 손으로 배를 안고 서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얼굴에 상처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막달이 다가올 텐데. 여자의 상황이 염려스러웠으나 어린이집에 전화를 건다. 원장은 확인하지 않길 원했으나 보호자가 원하면 시시티브이 확인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자가 대답한다.


여자는 생선구이와 야채 스틱으로 윤혜와 저녁을 먹는다. 윤혜에게 토마토를 잘라주고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뭐해? 집에 가서 얘기해, 학대야라는 답 메시지에 여자는 심장이 쿵쿵댄다. 대체 어떤 학대였을까. 선생이 윤혜를 때린 걸까. 여자는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토마토를 먹으며 책을 보고 있는 윤혜 얼굴의 상처가 커다랗게 보인다. 나흘인데, 딱 나흘 다녔을 뿐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덟 시가 될 즈음 남자가 집으로 들어온다. 영상을 보면 기억에 남을 테니까 안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남자는 씨씨티브이가 복사된 USB를 보여준다. 윤혜가 잠들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 여자는 USB를 노트북에 꽂는다.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테이블에 기다랗게 앉아 있다. 한 남자아이가 윤혜에게 달려든다. 선생이 두 아이를 떼어놓는다. 윤혜가 바닥에 누워 있다. 그 남자아이가 누워 있는 윤혜 발을 밟는다. 그 아이를 따라 몇몇 다른 아이들도 같은 행동을 한다. 윤혜가 운다. 선생이 온다. 선생은 우는 윤혜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 윤혜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다. 선생의 짜증스러운 기분은 시시티브이 상에서도 묻어난다. 선생은 거친 동작으로 윤혜의 팔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긴다. 서글서글하게 웃던 그 선생이다. 언제나 윤혜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선생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몸집이 더 커 보이는 그 남자아이가 윤혜를 민다. 윤혜가 운다. 선생은 뒤늦게 나타난다. 다시 윤혜가 혼자서 운다. 어린이집에서 윤혜가 경험한 것은 맞고 밟히고 긁히고 운 일이다. 아무도 아이의 울음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여자는 자신의 선택이 끔찍했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아이를 억지로 들이민 걸까.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보다 잘 지낸다는 선생의 말을 신뢰한 걸까. 너 그럴 줄 알았다, 는 선생의 말을 들으면서도 왜 윤혜를 억지로 데려가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 걸까. 윤혜가 혼자서 우느라 실핏줄까지 터진 줄 모른 걸까. 그동안 아이가 받았을 고통이 여자의 마음에서 임신한 배처럼 부풀어 올랐다. 여자는 자신이 터져서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낯선 차에 타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낯선 차에 타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당장 어린이집으로 뛰어가 그 아이를 똑같이 때리고 선생에게도 똑같은 행동으로 되돌려주고 싶다.

윤혜 담임 괜찮지 라는 말에 시시티브이를 먼저 확인한 남자는 괜찮기는 아이들을 짐짝 처럼 다루던데. 일하기 싫은 게 보이더라. 화가 나서 저 남자아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이 개인정보보호법상 이름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입을 앙 다물고 말하던데.


여자가 은색 열쇠를 꽂는다. 철컹 소리 내며 회색 철문이 열린다. 오른쪽에는 창고 문이 작게 있다. 여자는 다시 한번 회색 철문에 열쇠를 꽂는다. 미상녀님이 앞에 있다. 오랫동안 복용한 약의 영향으로 얼굴이 검은 미상녀님.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아 발가락으로만 걸어 다닌다. 걷는 모습과 말하는 모습이 영화 속 골룸과 비슷하다. 미상녀님을 보면서 여기서 뭐해요, 묻고 여자는 간호사실로 들어간다.

맑은 주말 오후, 오전 간호사가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다. 아침부터 *묶어놓고 시작했어, 그랬더니 하루가 조용하네. 쌤도 봐서 말썽이 일어날 것 같으면 한 명 묶어요, 그래야 조용해. 안 그래도 미상녀님이 빵을 훔쳐 갔다고 덕희님이 간호사실에 계속 찾아오고 있어 귀찮게.


여자는 눈을 떴다. 병원이 아니라 집이다. 천장의 하얗고 네모난 조명이 여자를 내려다본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니까, 여자는 생각했었다. 과한 노동에 비하면 적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일 뿐이니까,라고.


여자는 낫또에 간장을 넣는다. 젓가락으로 휘젓는다. 끈적끈적한 점성이 생기자 밥 위에 얹어 윤혜에게 갖다 준다. 윤혜는 아침을 먹으며 버스가 주인공인 만화영화를 보고 있다. 오늘 하루는 윤혜가 좋아하는 영상을 원하는 대로 보여주자고 여자는 생각한다. 창밖 나무에서는 파릇하게 새 순이 올라오고 햇살은 베란다에 머물러 있다. 핸드폰 진동음이 울린다. 석고대죄를 하면 마음이 풀리실까요로 시작해 백번 사죄 말씀 올립니다로 끝나는 어린이집 원장의 문자 메시지.


여자는 꿈속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에게 애정까지 바랄 수는 없는 거겠지, 여자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창밖의 작고 연약한 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강박 처치:자해, 타해의 위험이 있을 시에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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