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엄마, 그런 꿈은 아니지만
<정혜신의 사람 공부>를 읽고
캄캄한 성 안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적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무사 옷을 입고서 성 한가운데 나는 서 있다. 적들이 한꺼번에 내게로 달려든다. 두려워 눈을 감았다. 두려운 마음과는 다르게 칼 든 손을 높이 올려 적을 치기 시작했다. 적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기에,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칼을 휘두른다. 탕! 탕! 내 칼에 적이 맞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있기에 적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빙글빙글 돌며 적의 몸체를 느끼면서 계속 칼을 휘두른다. 탕! 탕!
떠나간 연인을 쫓아가느라 회색 자갈밭을 걸었다. 하얀색 긴 상의에 하얀 치마를 입고 허리는 하얀 끈으로 묶었다. 바람에 허리띠가 펄럭인다. 날카로운 자갈에 발에서는 피가 흐른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연인과의 헤어짐으로 내 마음은 찢겨나간다. 찢겨나가는 마음으로 눈을 뜨니 천장이 보인다.
언니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노란 전자시계가 일 곱 시를 가리킨다. 도로에는 차가 다니고 사람들은 내 옆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닌다.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언니가 사는 동네로 가려면 두 정거장 걸어야 한다. 옷은 다 젖고 머리카락에서 빗방울이 얼굴로 떨어진다. 며칠 후 시험인데,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손에 우산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산을 펼쳤다.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여전히 빗방울이 얼굴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눈을 뜨니 방 안이다.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다. 블라인드를 올리니 실제로 창밖에서는 비가 내린다. 비 맞는 세상에서 비를 보는 세상으로 넘어왔구나, 살에 닿는 공기가 서늘한 아침이다.
기모 상의와 기모 바지에 내의까지 아이에게 입힌다. 옅은 분홍색의 한 겨울용 두툼한 점퍼를 입혀 학교에 보낸다.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둘째와는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까 생각 중이다. 라면을 먹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프라이팬을 써서 볶거나 튀길 필요가 없고 애써 볶거나, 튀겼는데 아이가 안 먹는다고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밥은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꼬박꼬박 입에 넣어줘야 하는데 면은 앞에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먹는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라고 <정혜신의 사람 공부>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한다. 진료실을 벗어나서 사람들을 만나니 제대로 된 상담을 하게 된다고 말하는 의사이다.
개별적 존재란 꿈(밤에 꾸는) 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라고 이해했다. 엄마, 아빠라는 역할이나 경찰, 회사원 같은 직업에 묶이지 않고, 형식이나 이론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 개별적 존재라고.('이론 너머의 존재')
엄마지만, 나는 요리를 못한다. 정리는 좋아하지만 걸레질은 싫어한다. 앞치마를 입고 뚝딱뚝딱 요리를 차려내고 온 집안을 반짝반짝 닦아내는 기존의 엄마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사자처럼 으르렁거릴 때도 있으니, 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기존의 자애로운 엄마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꿈꾸는(밤에 꾸는) 엄마다. 무사 이기도하다가 (연인 잃은) 서글픈 여인이기도 하다가 비 맞는 세상에서 보기만 하는 세상으로 옮겨 다니는 엄마다.
엄마,라고 칭해지는 내 역할 안에는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엄마니까 이래야지 하면 슬퍼지고 이런 엄마야, 하면 조금 편안하다. 사람이니까 이래야지 하면 슬퍼지고 이런 사람이야, 하면 조금 편안하다.
점심에는 라면을 끓이고 정리를 해야지. 아침부터 내린 비로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맺혀있다. 흐린 하늘 아래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낙엽을 보며 아이가 새라고 말해서 나도 새라고 말했다.
*사진출처:요시고 사진전(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