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도서관을 못 갑니다)
김훈 <칼의 노래>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칼의 노래 2>에서
그 해 겨울, 전쟁 통에 이질이라는 전염병이 돌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고, 굶어 죽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에도 이순신은 밥을 먹는다. 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은 굶어 죽지 않는다. 보리밥의 낟알들이 이순신의 입속에서 흩어졌다. 흩어진 낟알들을 한 알씩 어금니로 깨뜨려 이순신은 먹었다.
굶어 죽은 송장이 길에 널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백성들이 덤벼들어 그 살을 뜯어먹었다. 뜯어먹은 자들도 머지않아 죽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술 취해서 먹은 것을 토하면 주린 백성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틀어박고 빨아먹었다. 힘이 없는 자는 달려들지 못하고 뒷전에서 울었다.
<칼의 노래>에 수록된 <난중잡록>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노랫말은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에 대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로 너를 위해 떠나 주겠다는 노랫말은 참혹하기보다 달콤하다. 내 사랑은 나를 떠나 너에게로 향한다. 너의 안위를 생각한다. 너를 떠나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나는 얼마나 대견한가. ‘전쟁 같은 사랑’은 행복이자 도취이다.
어머니는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밭에서 떨어진 초록 잎을 주웠다. 어린 나이에 바다에서 조개를 캐는 시간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바다에서 나는 거든지, 밭에서 나는 거든지 물을 듬뿍 붓고 팔팔 끓였다. 부모와 어린 동생들의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는 온종일 지게를 지고 걸어 다녔다. 일거리를 구하거나 산에서 나무뿌리라도 찾아야 했다.
붉게 양념한 오징어를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부모는 감탄했다. 입이 벌어졌다. 너희들은 굶지 않고 학교에 다니니 얼마나 좋으냐. 전쟁도 없다. 돈을 벌어오라고 내보내는 부모도 아니다. 학용품을 사주고 필요하다면 용돈도 준다. 그 사이 흐물거리던 오징어살이 통통한 하얀 살로 구워지고 맛있다고, 맛있다고 부모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징어가 지글지글 타는 소리는 과거의 굶주림에서 떠나온 현재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굶주리지 않는다는 확인이자 행복이다.
바깥에서 바람이 불어대는 어스름한 저녁, 된장찌개는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식구 수에 맞춰 나는 밥을 푼다. 전쟁 통에 굶어 죽는 시체들을 옆에 두고 임금은 울면서 밥을 먹었다. 이순신은 입속에서 흩어지는 보리밥을 한 알씩 어금니로 깨뜨려 먹었다. 권력이 밥 한 끼였다.
환한 인공조명 아래 따뜻한 바닥에서 우리는 밥을 먹는다. 구운 고구마 껍질을 벗기며 아이들은 까르르 웃는다. 한 끼의 밥이 처절함이 아니라 일상인 날들이다. 나뭇잎을 떨어뜨린 앙상한 가지에 새가 날다, 앉는 겨울이다.
방역 패스로 도서관을 못 간다 생각하니 며칠 우울했습니다.
외출이라면 2,3주에 한번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걸어 다니다 오는 것이 다인데 이제 그것을 못하게 됐네요. 개인 사정과 개인 체질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이 강압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의 최선이 방역 패스라면 협조해야겠지요.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현재 건강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맞을까, 안 맞을까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한 고민이 아닌가(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쪽으로 바꿔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습니다.) 정도로 정리하며 우울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나무도 가지고 있는 거 다 떨어뜨리고 빈 몸으로 바람을 맞는데, 필요 없는 거 다 떨구고 이 겨울을 나야겠구나 했습니다.(역시 조금 우울한가요. 뭐 우울한 시기는 조금 우울해야지요. 요즘 같은 때에 마냥 행복한 것도 이상하잖아요.) 아무튼 조금 우울하기는 하지만 괜찮다는 말입니다.
빌 게이츠가 “내년 어느 시점에 코로나19 종식될 것”이라고 했다던데 부디 그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요.
사설이 길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요즘 같은 때 가장 좋은 인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