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만 있으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앞에 있는 것들로 시선이 간다. 싱크대 위 아무렇게나 놓인 그릇들, 식탁 위 잔뜩 올려진 물건들. 거실 중심으로 널려 있는 공룡피규어, 해양 피규어, 탐험선. 오늘은 집안일에 더 신경 써야겠어, 의자에서 일어서는데 나도가 옥토넛 놀이하자고 부른다. 칼 든 피규어를 내밀며 엄마는 괴물. 그래 거실 바닥에 앉아 피규어를 집어 든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오전인데도 밖은 흐릿하고 영상을 더 좋아하는 나이인 소리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점심 먹고 산책을 나갈 수 있으려나 고민이다. 미세먼지와 오미크론이라.
어제 꿈에서는 언니가 내 머리를 발로 차서 내가 언니를 눕히며 공격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뒤의 장면은 예전에 기분을 상하게 했던 사람이 옆에 서 있어“저리 가"라고 크게 소리쳤다. 꽃집으로 장면이 바뀌어 친한 친구가 꽃을 사려는데 돈이 부족해 사장에게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애걸복걸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다 못해서 내가 돈을 보태겠다고 하니 친구는 화를 내며 꽃집을 뛰쳐나갔다. 친구의 뒤를 쫓으면서 “너도 나 같으면 똑같이 했을 거잖아”계속 소리쳤다.
공격적인 자아의 출현인가, 억압된 것들의 분출인건가.
A형의 성격에 형제 서열도 중간이다 보니(네 자매 중 셋째)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내게도 좋은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내게도 무리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 함께 눈물 흘리는 공감성 혹은 여성성을 기피하면서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와 아이의 구분을 두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엄마는 지금 이 책 읽는 게 더 좋은데.”
“저 영상은 보기 싫어”
“네가 그런 말(행동)을 하면 나는 기분이 상해”
보통 말들 같지만 보통의 관계에서 이런 말들을 쓴 적이 별로 없다.
저런 류의 말들은(일종의 거절의 말들) 숨긴다. 숨긴 다기보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른다. 뭐 먹고 싶어 물으면 아무거나 어디 가고 싶어 물으면 네가 가고 싶은 곳.
너는이라는 질문에, 앞에 있는 사람의 상황부터 표정까지 살피며 현재 그 사람의 기분까지 유추되면 내 대답을 해야 하나 말해야 하나 또 한 번 내면의 검열에 시달린다. 이렇게 글로 나타내니 꽤나 순차적으로 내 의도 하에 이루어지는 일 같은데 질문과 동시에 일어나는 무의도적인 순간적인 반응이다.
이유 없는 피로감과 만남에 대한 주저와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동경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대부분 이런 면이 있고 정도의 차이라고는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반응하는 마음의 구조는 복잡한 편이다.
꿈으로라도 감정이 표출됐으니 조금은 편안해졌으려나. 아이들의 몸이 한 뼘씩 성장하듯이 어른도 한 뼘씩 성장해가는 듯싶다. 몸은 다 자랐으니 정신이라고 할까.
어쨌든 몸이 다 자란 사람은 이 집에서 지금은 나뿐이니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위하여 몸을 움직여 봐야지. 나도와의 피규어 놀이가 끝난 후가 되겠지만.(이러다가 집안 정리는 내일로 다시 미뤄질 가능성도 많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