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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전도 무선 이어폰이 가져온 파장

재미없어서 죄송합니다

by 북남북녀

“이게 귀를 막지 않아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회사에서 쓰던 골전도 무선 이어폰을 남편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래, 대답하고 나는 이어폰을 잡동사니 바구니에 넣고 잊어버렸다.


아이들이 남편과 있는 동안에 저녁 설거지를 끝내야 하는데.

싫다. 설거지가 너무도 싫다. 싱크대에 담가놓고 내일 아침에 할까. 아침에 쌓여 있는 그릇을 보면 기분이 안 좋을 텐데. 한숨이 푹푹 나오는데 골전도 무선 이어폰이 기억난다.


설거지하면서 듣기에는 노래가 좋겠지. 화제의 동영상을 클릭! 좋다. 목소리가 맑고 서정적이네. 맑은 음색은 맑은 음색대로 무명가수의 노래들은 그분들만의 개성으로 좋다. 클릭! 클릭! 관련 동영상을 이어가니 최백호 님까지 이어진다. 목소리에서는 인생이 가사에서는 세월이 묻어난다. 이것도 좋은데.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하면서 영상을 클릭해가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아이들을 급하게 씻기고 자리에 누우니 노랫소리가 귀에서 계속 들려오는 듯하다. 영상이 이런 재미구나.

시골에 갔을 때 어르신들이 텔레비전보다는 개인 영상을 보며 잠드신다기에 그래요? 의아했는데 내게 맞는 관심사에 맞춰 추천되는 영상을 접하니 그 재미를 알겠다.


<곡성>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 고 <미스터 션사인>이 마지막으로 시청한 드라마다. <미스터 션샤인>은 초록창에 뜨는 동영상으로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에 간신이 봤다. 지금은 아홉 살인 첫째가 다섯 살 때 텔레비전을 구입했으나 작은방에 놓인 텔레비전은 아이들 밥 먹이기 용으로 쓰인다. 잘 먹지 않는 밥을 먹이고자 개인 방송을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밥을 먹였다. 젤리 먹방, 키즈 유튜버, 애니메이션, 어린이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다. 한 번은 보고 싶은 정규 프로그램이 있어 채널을 돌렸다가 아이들이 울고불고하는 통에 얼른 키즈 개인 방송으로 다시 연결했다.


선택하는 책들까지 1900년대, 혹은 더 예전 책 들이기도 하니 내가 어느 시대 사람이지, 잠시 혼란스럽다. 손가락 하나로 자신에게 꼭 맞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세상에서 먼지 냄새 풀풀 맡아지는 책이라니. 전자책을 읽어볼까 하다가도 두, 세 페이지 못 넘기고 익숙한 도서관만 드나드는데.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 인공조명인데 보이지도 않는 별을 찾겠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고집센 사람 같기도 하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은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에 이미 듣기도 했었는데. 재미없어서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은 날. 재미도 없을 글을 또 이렇게 끄적거린다.


책장을 넘기는 재미에, 클릭하며 보는 재미도 알았으니 앞으로 또 무슨 재미있는 것을 알아가려나. 느림보 거북이 천천히도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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