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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가는 것들

보르헤스 <끼어든 여자>

by 북남북녀

명상이라는 것은 시끄러운 내면을 잠잠하게 한다. 종교라는 것은 자아를 내려놓게 한다. 명상을 수행하고 종교를 믿는 것은 자신을 벗어나려는 욕구를 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든지,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든지. 자신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욕구를 인간이 품고 있는 거라고.


<칼잡이들의 이야기> 속에 수록된 <끼어든 여자>에서는 우애 깊은 형제가 나온다. 형제의 연대는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도 유별나다.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그 도시에서 형 끄리스티앙은 훌리아나라는 여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얼마 후 동생 에두아르도가 교류를 끊고 혼자 술을 마시며 무뚝뚝하게 변해간다. 주변 사람들이 동생의 마음을 눈치챌 정도니 형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여자를 마음대로 하라고 형은 동생에게 제안한다.


여자를 공유하며 형제의 생활은 평화를 찾은 듯했으나 어느 날부터 다툼이 많아진다. 여자의 이름은 서로 언급하지 않으나 형제는 여자가 그들 사이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형제는 여자를 사창가에 팔고 돈을 반으로 나눈다.


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예전과 같은 일상이 형제에게 돌아온다. 형제는 구원받은 듯했다. 얼마 뒤 형제는 각각의 이유를 대며 집을 비우기 시작한다. 훌리아나가 있는 사창가에서 마주친 둘은 포주에게 훌리아나를 사서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 형은 결행한다. 울먹거리며 서로를 포옹한 형제는 죽은 여자를 땅에 묻는다.


사랑을 전파하는 예수가 유대인들에게는 괴로움이었다. 예수의 전파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예수 역시 돈에 팔려 십자가형을 받은 후 땅에 묻혔다. 마음을 파고드는 자들이 걷는 길이다.


명상과 종교는 자신을 내려놓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자기 주도하'에서라는 걸까.


지켜야 할 게 견고한 형제는 그 후로도 무덤에 넣어야 할 게 계속 있었을 것이고 무덤과 다르지 않은 세상에서 살다가 무덤으로 드는 일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땅속에 묻으며 형제의 일부 역시 땅에 묻혔을 거라고. 생생하게 살아가게 하는 활기 같은 것. 아마도 그런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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