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을 가지고 노트에 글씨를 쓰면 다르다, 고 말한 학창 시절 선생님이 있었다. 불분명한 이유로 편애하고 감정적으로 학생들을 대하여 저항력을 높였던 선생님이 대부분이던 때에, 감정이 아닌 분명한 규칙을 가지고 공정하게 학생들을 훈계했기에 무섭기는 하지만 좋은 선생님 같아, 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는 교사였다. 애정이 담긴 노트는 다르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한 학기가 끝날 때에는 노트를 가져가 검사를 했다. 잘한 사람은 칭찬과 함께 작은 선물도 받았다.
“모모는 노트에 애정이 보이더라. 얼마나 보기 좋게 정리했는지 몰라.”
내심 이름이 불리기를 기대하고 있던 나는 풍선에서 공기가 빠지듯 기대했던 마음이 푸시시 빠져나갔다. 쉬는 시간에 모모에게 노트를 보여달라는 아이들이 몰렸다. 먼저 본 아이들이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내 차례가 되어 모모의 노트를 휘리릭 넘겨보는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거 인쇄한 거 아니야?
반듯해 보이는 정자체의 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다. 연필 굵기부터 심지어는 농도까지도. 노트에 애정을 듬뿍 담았다고 자부한 나는 '애정 담기 경연'이 아니라 '글씨 잘 쓰기 경연'이었네, 시큰둥해졌다. 애정을 강조한 선생님이 글씨 쓰는 기술만 본 듯하다고.
필요 없는 유인물, 머리핀, 장난감, 비닐류, 다 쓴 건전지, 아이 교재, 영수증... 작은 공간을 정리하며 주말 오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건성건성 급하게 놓았던 물건들을 제 자리로 보내고, 버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던 정자체의 글씨는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이제 서야 들었다. 애정은 듬뿍 담겼지만 때와 상황에 따라 달랐던 삐뚤빼뚤한 내 글씨체. 애정이라는 것은 때와 상황에 상관없이 한 글자, 한 글자 제대로 쓰려는 자세였던 걸까, 하고. 애정을 가지고 노트 필기하라는 말은 매 순간 정성을 다하면 달라진다는 말이었던 걸까, 하고. 때와 상황이 어떠하든지 한 페이지의 노트에 애정을 담는 마음으로 매 순간을 지나야지.
잿빛 하늘에서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바라보는 것.
언 땅이 녹아내리며 웅크리고 있을 씨앗의 기지개 소리를 듣는 것. 떼 부리는 아이들의 말속에서 본질적인 마음 하나 알아채는 것.
보고 듣고 간직해야 하는 이 순간에 마음 다해 성실하다면, 노트 검사하는 날이 온다 해도 정성스럽게 적어내려 간 글자를 보며 마음 뿌듯해지겠지. 잘했다는 칭찬을 듣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