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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고 사라지고 기억하고

요시모토 바나나 <시모키자와에 대하여>

by 북남북녀


고등학교 입시를 끝내고 아버지와 함께 걷던 그리운 길이 있는 동네.

친구 집에 가며 '언젠가 이곳에서 살지도 모르겠네' 간직되어 있던 풍경.

젊은 날의 애인과 헤어지며 눈물바람으로 택시를 타던 거리.


그 동네, 풍경, 거리를 저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다닌다.


너무 슬프고 눈앞이 캄캄해서 훌쩍훌쩍 우는 바람에 운전사 아저씨를 긴장케 하면서 먼 동네로 돌아갔던 그날의 외톨이였던 내게, ‘그다음에 결국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시모키타자와에 살고, 아이와 함께 이곳을 지나다니게 돼’. 하고 말해 주고 싶다.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것인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 p33


<시모키타자와에 대하여>는 응원가라 말할 수 있을 듯싶다. 동네는 변해간다. 개성 있고 정감 어린 개인 상점은 사라지고, 거대 기업이 관여하는 수익성 있는 가게들로 대체된다. 거대 기업 앞에서 개인은 어떻게 하든지 힘없는 약자다. 사기성이 짙은 일들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낮과 밤이 바뀌어 새벽에 화분에 물을 주던 앞 집 할머니가 보이지 않고, 마당을 잘 가꿔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했던 이웃 할머니도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좋아하는 장난감을 파는 가게 나초메 삼반치,휴식과 책이 공존하던 피리카탄토 서점. 돈의 흐름과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열과 성을 다해 살아내던 사람들이, 가게가 사라져 간다.


돈으로 흐르는 세상은 생명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 흐름 안에서 저자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인사를 건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지지 마세요”생명을 죽이려는 힘이 세상에는 가득하지만 지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멋진 사람들이, 멋진 장소가 아직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당신들의 삶을 이 거리가 지켜보고 저 같은 사람(저자)이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사람이 들어가도, 나가도 무심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하는 김밥 집이 있는 동네에 나는 살고 있다.(이 집의 달짝지근하고 국물 자작한 떡볶이를 저는 좋아합니다.) 둘째가 좋아하는 신선한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가 있고, 쌀로 만드는 작은 빵집이 있다. 수제청을 직접 만들어 파는 카페의 부드럽고 달콤한 라떼.밤낮으로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슈퍼. 아이와 들릴 때면 빨대 낀 요구르트를 건네는 세탁소 아주머니.


동네 아이들이 다 모이는 것 같은 작은 공원에서는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이나 삶은 감자가 노는 아이들 손에 쥐어진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스스럼없이 “안녕하세요”인사를 건네는 이웃분들과 가까이 다가가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는 길고양이들. 때 되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고양이맘이 등장하고 쓱쓱 바닥을 쓰는 청소부 할아버지 옆에서는 비둘기들이 바쁘게 모이를 먹고 있다.


기억해야지, 언젠가 사라져 갈 풍경과 멋진 사람들을.


"지지 마세요"생명을 죽이려는 힘이 세상에는 가득하지만 지친 마음을 치유해 주는 멋진 사람들이, 멋진 장소가 아직은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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