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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걷기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북남북녀

이런 걸 그냥 두면 어떻게 해, 아침 근무자가 쓰레기통을 발로 찬다. 밤샘근무 후 인수인계를 끝내고 퇴근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배웅하면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다. 밤을 꼬박 새웠더니 머리는 하얀 막을 씌운 듯 뿌옇고(멍하다고 해야 하나) 눈꺼풀은 무거운데, 무슨 일이지 개운치가 않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계속 걸었다. 뭔지 모를 기분 나쁜 느낌이 머릿속에 꽉 차있다. 쓰레기통을 발로 차는 짜증이 나를 향해 있는 건지(의도적인 건가), 그 자신의 무의식적인 표현이었는지(불행히도 나는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나한테 직접 말해주면 모를까 눈치가 없는 편이다.) 일 가운데 내가 빠뜨린 게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며.


사이클을 타는 사람, 뛰는 사람, 걷는 사람이 스쳐간다. 물 비린내가 진동하고 탁한 물속에서 물고기가 느릿하게 헤엄친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얇은 대의 기다란 식물들. 파란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 도로가의 차소리와 매캐한 먼지. 기침이 터지고, 걷고, 한낮에 잠을 자고.


뭔지 모르게 기분 나쁜 느낌은 가라앉았다. 갇히는 느낌이 싫어 한두 정거장 거리는 걸어 다니는 편인데. 걷기의 효용을 제대로 느낀 날이었다. 호주머니 속 돌멩이들이 충돌하여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면, 길가에 그 돌멩이들을 하나 둘 떨구고 온 느낌.


달리기는 어렵다, 글쓰기는 어렵다, 삶은 어렵다 인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목표를 향하여 괜찮을 거야, 낙관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마라톤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마라톤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가 글쓰기의 자세이고 삶의 자세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부담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저자의 문장이 고통 없이 나온 것은 아니구나, 추정하면서.


원하는 기록을 위하여 저자가 준비하는 꾸준함. 진지하게 생각하고 착실하게 임하는 매일의 연습(훈련). 실전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야(전심전력을 다해야) 성공하는구나 하면서도 ‘아, 나도 이렇게 달리고 싶다’고는 또 생각하지 않는다.(고집스럽다.) 긴장감을 못 견디는 나는(얼고, 떨고, 굳고) 마음 가는 대로 목적 없이 걷는 걸음을 좋아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가벼움으로 언제든지 뒤돌아설 수 있는.


그럼에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덮으며 좋은 책이네, 중얼거렸다. 나와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어떤 점이 좋았을까 생각하니, 어려움을 차근차근 극복해가는 자세였다. 투정 없이, 불만 없이. 고통은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 본다, 착실하게.


달리기는 못 배우겠지만(목표를 정해서 매진하는 것, 버겁다.) 이런 자세는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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