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경한 산책

by 북남북녀

뛰기로 했다, 잠깐 뛰고 힘들어 멈추겠지만. 잡생각이 많다. 흔들어도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질긴 잡동사니 생각들. 숨을 헐떡거리며 연녹색 점퍼에 검은 레깅스 입은 앞서 걷는 사람을 따라잡았다. 따라잡을 의도로 뛴 것이 아니라 잡생각을 떨어뜨리려다 보니 앞지르게 됐는데(앞질러서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하나)

5분 뛰었을까 얼굴에 물방울이 닿았다. 나뭇잎에 이슬이 맺혔나 뛰기를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며 걷는데 다시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진다. 머리 위로 가로수도 없는 곳인데 먹구름 외에는 비었는데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것만 확인하고 집 밖을 나섰다. 손을 뻗어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열어 날씨를 확인한다. 오전 7시부터 비 표기가 있다. 지금 시간은 6시 57분, 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데 삼십 분은 걸릴 텐데. 하늘 위에 깔린 회색 구름을 보니 심상치 않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기온에 내리는 비. 목적지까지 반을 남겨두고 돌아섰다. 연녹색 점퍼에 레깅스를 입은 조금 전에 앞질렀던 사람이 검은색 우산을 펼치더니 여유롭게 걸어 나간다. 뒤를 걷던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여성도 우아하게 보라색 우산을 펼치고 내 옆을 스쳐간다.(저 철저한 준비성이라니)

후두를 눌러쓰고 혼자서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끈질긴 잡생각이 아니라 비를 덜 맞기 위한 몸부림이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십 분이라도 줄여야 한다. 축축이 젖은 청바지가 차갑게 살에 붙고 저지 원단의 후두티셔츠는 무겁게 느껴진다. 철 지난 옷들을 산책용으로 입는데 하필 오늘 청바지에 손이 갔다. 그것도 골반에 걸쳐지는 청바지를. 허리띠를 해서 다행이지 줄줄 내려갈 뻔했다.

뛰기로 했으면서 왜 옷걸이에서 청바지를 꺼냈을까, 왜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신경 쓰지 못할까, 왜 이렇게 무신경할까 생각하면 끝이 없다. 그냥 나라는 사람은 뛰어야지 생각하면서 청바지에 손이 가는 사람이다. 그뿐이다.

목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몸에서 열이 발산된다. 티셔츠에 후두가 있어 다행이지 머리까지 모두 젖을 뻔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서 딸기 요구르트를 꺼내 큰 잔에 가득 따라 마셨다. 머리가 띵하고 목이 탄다. 잡생각은 사라지고 내 안에서 울리는 심장소리만 요란하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속 에픽테토스 인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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