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상의 여러 조각

by 북남북녀

세 네시쯤 눈이 떠져 책상에 앉는다. 지역 카페에 들어가 새로운 사건이나 아이 관련 제목의 글을 훑는다. 성서를 읽고(오늘은 루가 19장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하버드 철학 수업>을 펼친다.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읽으니 속도가 붙지 않는다. 중간까지 읽는데 일주일째다.

어슴푸레한 길을 걷고 있으면 주차장으로 향하는 남자 한 명, 교회로 향하는 여자 한 명. 비에 젖어 떨어진 나뭇잎을 밟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나무에 시선을 둔다. 새벽 공기 속에서 앞을 향하며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눈 못 뜨는 강아지 같은 아이 앞에 들기름 섞인 간장 계란밥을 놓는다. 둘째에게는 참기름 섞인 간장 계란밥

가방 챙겼어? 양치는? 세수는 한 거지?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어제 찾아놨어야지. 물통은 가방에 넣었어? 연필은 깎았지?

휴가 같네. 아이들이 떠난 집 안에서 멍하게 흐르는 시간을 차단하려 일어선다. 커피믹스가 든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붓고 독서대,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 졸림 방지 껌, 미니 약과, 긴 팔옷이 담긴 에코백을 오른쪽 어깨에 멘다.

자주 보는 노인 한 분이 창가 테이블, 처음 보는 남성 한 명이 세 번째 테이블. 두 번째 테이블에 가방을 놓는다. 자잘한 고민은 피하는 편이라 매번 같은 자리다. 책을 펼치는데 눈이 감긴다. 텀블러, 졸림 방지 껌, 미니 약과가 든 파우치와 책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텀블러에 든 커피를 마시고 낱개 포장된 약과의 비닐을 뜯는다. 공원의 나무와 움직이는 사람들 서늘한 공기 속에서 맡아지는 라면 냄새. 졸림 방지 껌 두 개를 입안에 넣고 자료실로 돌아온다. 사서 두 명이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를 보고 있다. 가방이 놓인 자리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토머스 머튼의 책을 펼친다.

명석한 젊은이가 트라피스트 수도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중간까지 읽고 집으로 돌아온다.

후들거리는 데님에 물 빠진 검은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킥보드를 끌고서 유치원으로 향한다. 킥보드를 탄 나도가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시큼한 액체를 뿌려먹는 네모난 모양 사탕 두 개를 고른다. "하나는 누나 거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화장실 앞으로 달려가던 아이가 멈춘다. 옷 벗을 틈 없이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와 흐른다. 난감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


뇌 속에서 말이 휘몰아치는데 여섯 살이잖아 진동하는 울림. 천천히 침을 삼킨다. 다음부터는 급하면 집에 들렀다 편의점 가자, 간식은 늦게 사도 괜찮아. 엄마 똥도 나왔어. 그래

프라이팬에 삼겹살 두 덩이를 올린다. 둥그렇게 자른 양파 두 조각도 삼겹살 옆에 놓고 굽는다. 잘게 자른 구운 고기를 아이들 식판에 담는다.


엄마, 라면 먹고 싶어. 내일 먹자, 오늘은 고기 먹고.

엄마 마라탕도. 내일 생각해 보자, 손 씻고 와서 앉아.

남은 고기, 구운 양파, 상추, 허브소금, 열무김치, 쌈장이 어지러이 놓여 있는 식탁 위

나도가 방으로 들어온다. 베이비 로션 냄새가 맡아진다. 베개 두 개를 겹쳐 베고 누운 내 배 위로 나도의 머리가 얹어진다. 나도는 패드를 들고 키즈 유튜브를 본다. 나는 핸드폰에 뜬 조각난 드라마 영상을 클릭한다. 음습하고 기분 나쁜데 왜 계속 클릭하는 걸까 생각하며 오른손으로 아이의 등을 긁는다.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다 놓쳐서 내 머리 옆으로 핸드폰이 떨어진다.


나도야 언제 혼자 잘 거야. 싫어, 무서워 대답을 듣는데 눈이 감긴다. 내일은 <하버드 철학 수업>을 다 읽어야지. 마음이나 본질과는 상관없이 그때그때 필요한 말들의 지속인 하루. 본질은 정신일까, 물질일까 눈 감기 전 본 그레이 데님이 떠오른다. 부츠컷은 없는데 패션 유튜버가 입은 모습이 깔끔하기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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