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구입했던 롱 기장의 경량 패닝과 미들 기장 블랙 패딩을 중고사이트에 올렸다. 두 개의 패딩이 팔리면 솜사탕같이 부드러운 패딩을 구입해야지. 솜사탕 같다는 표현이 그 패딩에는 어울린다. 풍성한 퍼가 달린 후두에 딸기우유 같은 빛깔. 실물을 보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분홍색상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구입한 미들 기장 블랙 패딩은 보온성이 좋고 방수, 방풍 기능으로 한파에 입기 적합했으나 기능이 좋아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탄탄한 옷 재질이 몸을 옥죄는 듯했고 옷의 존재감이 커서인지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사겠다는 구매자가 곧 나타났다. 롱 기장의 경량 패딩과 미들 기장 블랙패딩을 모두 구매하겠다며 몇 초 만에 돈을 보내왔다. 아니, 사기꾼이면 어쩌려고 별다른 질문도 없이 그냥 보내지 생각하며 주소를 물었는데 바로 옆 동네 아닌가(택배 거래를 원하기에 더 먼 거리 일 줄 알았다.) 주말 오전이면 남편과 산책하는 경로에 있는 곳이라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 큰 공원을 가로지르거나 산을 올라 등산 코스로 걸으면 한 시간 거리다.
커다란 쇼핑백에 패딩 두 개를 접어 넣고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전 날 남편이 회식이어서 나는 먼저 잠들었다. 회식이 어땠는지, 고기는 많이 먹었는지 물으니 사회를 보느라 편하게 먹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이어트를 해서 6킬로 정도 빠진 남편의 얼굴이 평상시보다 작아 보인다. 한 손으로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어 더 그런지도. 이십 대 때 남편의 얼굴은 강아지 같았는데. 짙은 눈썹에 동글동글한 눈이 순한 강아지를 연상시켰다. 지금은 아빠를 빼닮은 소리에게 강아지 같네,라는 말을 무심결에 하게 된다. 초승달 같은 눈썹에 아래로 쳐진 눈꼬리가 순한 강아지를 연상시킨다. 그러고 보니 소리는 태몽도 강아지였는데. 작고 하얀 강아지가 내 품으로 뛰어드는 꿈을 꿨으니
나도가 어제 유치원에서 오더니 엄마 예뻐, 눈도 예뻐, 코도 예뻐, 할머니가 돼도 예뻐하더니 죽을 때도 예뻐 그러던데? 이 말을 하며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는 말하는 재미에 빠져있었고 어디에선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은 모양이라고 이해했다. 아이들이 말하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상쾌한지. 지금의 겨울공기 같다. 난방이 틀어져있는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을 때 뇌 속을 파고드는 듯한 서늘한 상쾌함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구매자 집 앞에 도착했다. 패딩이 든 쇼핑백을 문고리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문에 놓을게요,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겸사겸사 그 집 가까이 위치한 도서관도 들렸다. 내가 네 권, 남편이 두 권 계획에 없던 책을 대출했다. 장바구니를 하나만 가져왔는데 어떻게 하지, 두 권 정도는 내가 안고 갈 수 있어. 어떻게 하나만 가져오냐 투덜대며 남편이 6권 전부를 장바구니에 넣는다. 한쪽 어깨에 멘다. 이럴 거면 백팩 메고 오라고 하지 투덜거림은 여전했으나
집으로 향하는 공원으로 들어서니 부드러운 해가 내리쬔다. 혹시 몰라서 내의를 입었는데 안 입을 걸 그랬나 봐 날씨 괜찮은데. 안 입었으면 추웠을 거야 남편이 대답하며 나란히 길을 걷는다. 걷는 중에 메시지 알람이 울려 확인하니 모든 긍정적인 문구에 체크하여 보낸 구매자의 후기였다. 패딩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나 역시 긍정적인 문구에 표기하여 후기를 기록했다. 이제 솜사탕 같은 딸기우유 빛깔 패딩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 집에 가서 어떤 책을 먼저 볼까, 물론 그전에 청소를 해야겠지만. 공원 입구를 빠져나오며 우리는 터널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