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이트 불빛이 눈부셨으나 눈에 담기지는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는 달빛 역시. 택시 안에서 쉬지 않고 기침하는 아이 만이 내 마음에 가득 담겨 심장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기침과 열로 핼쑥하고 초췌한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운전석의 거울로 나와 아이를 본 택시 기사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죄다 아프면서 커요. 감기도 걸려봐야 면역력이 생겨 건강해져요.
낯 모르는 이의 위안의 말에 내 어깨에 기댄 아이의 몸을 한 손으로 감싸며 찬 기운 속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나까지 다섯 명이 단칸방이나 부엌방 같은 작은방이 하나 더 달린 집들을 전전할 때 병원에 가 본 적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귓속에 벌레가 들어간 듯이 삭삭 긁어내는 이물감에 엄마 귀가 이상해, 했더니 어머니는 먼 곳으로 시선을 두며 아이들은 한 번씩 귀앓이를 하지.
다음 날부터 상상도 할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된다. 귓속을 싹싹 긁어내는 통증으로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통증으로 눈을 뜨고 있으면 어두운 방 안의 모든 것들이 유령처럼 보이며 공포를 자아냈다. 피곤한 숨을 몰아쉬며 깊이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와 오래된 이불에서 맡아지던 곰팡내. 안의 통증보다도 밖의 두려움으로 다시 감기던 눈
통증은 진물이 되어 흐르고 손가락을 대면 끈적한 분비물이 만져졌다. 귀 아래로 단단하게 굳은 것을 시간이 날 때마다 손으로 떼어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슈퍼라도 가려면 찡그린 내 표정에 길 가던 사람이 어디 아프니, 물어 오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한 번씩 한다는 귀앓이를 별도의 약 없이 견뎌냈다. 이마가 따끈하고 목이 붓는 감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찬 기운을 맞고 또 맞았다. 어지러워 무릎이 꺾이면 다시 또 일어나 뛰었다. 한 번씩, 두 번씩, 세 번씩 통증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자잘한 감기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힘이 생겼다.
아이는 다 아프며 크지. 걱정하지 마, 건강해지는 과정일 뿐이니까.
낯 모르는 이의 부드러운 말은 내 안에서 또 밖에서 흐르고 있다. 경쾌하게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낯선 타인이 때로는 천사의 역할로 나타난다. 신의 음성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진물이 흐르는 아이의 평온을 나는 지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