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하기 싫지

아르바이트가 내게 가르쳐준 것

by 북남북녀

아이들이 잠을 깨기 전 옷 정리를 시작한다. 넘쳐나는 행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두툼한 외투와 장갑, 털모자 같은 겨울 용품은 박스에 넣는다. 굳은 클레이, 그림 연습한 종이, 수업 시간에 만든 시기를 지난 작품들. 책 이외의 것들로 책장에 틈이 없다.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담는다. 남은 책을 정리한다. 꽉 차서 답답해 보이던 책장 한 층이 통째로 빈다. 아이 방 옷과 책장을 정리했으니 내일은 안방에 있는 옷과 책을 정리해야지. 놀이용으로 두었던 인형과 장난감도 아이 방으로 다시 돌려보내야겠다. 내일의 청소 계획을 세우며 냉장고에서 꺼낸 계란을 그릇 모서리에 툭 친다. 일곱 시가 되어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다.

하기 싫은 집안일 하나를 아침 일찍 해치우는 것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배웠다. 오전에 꼭 두 명이 근무해야 하는 편의점이었다. 본사에서 자주 나와 매장을 둘러보기 때문에 선반 위 물건 정리나 청소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초록색과 붉은색이 들어가는 유니폼을 입고서 세제와 걸레, 물건 담을 바구니를 들고 선반 앞에 선다. 오늘이 생활용품 코너라면 내일은 과자 코너, 다음 날은 즉석식품 코너. 바구니 안에 선반 위 물건을 모두 쓸어 담고 먼지를 제거하고 닦은 후에 바구니 속 물건도 하나하나 닦아 선반 위에 다시 올린다.

하나의 코너에 긴 선반이 세 개, 네 개쯤 되니 아르바이트 중 한 명은 근무시간 내내 청소하는 것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자잘한 물건들을 언제 닦고 또 언제 정리하지 싶었지만 가만히 서거나 앉아서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닦는 일은 의외로 정신을 상쾌하게 했다. 눈 오는 날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 오는 날은 우산 쓴 사람들의 발자국을 쫓으며(걸을 때마다 튀어 오르던 물방울과 어둡던 하늘) 느긋하게 먼지 제거하는 일에 집중했다.

딸만 넷인 집이었으나 엄마는 우리에게 가사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거리를 볼 때면 딸들이 있어도 소용없다며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으나 귀를 막고 지나면 그뿐이었다. 빨래도 해 본 적 없이 설거지 몇 번 한 것이(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결혼하기 전 가사 노동의 전부였다. 남편과 둘이 생활하던 시절에는 요리를 내가 하면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면 나는 걸레질을 하니 성인 두 명이 사는 집의 가사노동은 소꿉장난처럼 가벼웠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는 매일 청소를 해도 집안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버거웠다. 흐트러져 있는 집안을 볼 때면 마음도 흐트러지는 듯해 그 공간 안에 있는 것이 편안하지 않았다. (어느 소설책에서 남편과 아내가 설거지를 서로 미루다가 이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럴 만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보내야 하는 공간. 혼란 속에서 생각해 낸 방법이 편의점에서 배운 방법이다. 아이들이 깨기 전 이른 아침 가장 마음에 걸리는 집안일 하나를 해치운다. 시간은 한 시간에서 길면 한 시간 반. 아침부터 청소에 기력을 모두 소진하면 하루가 힘들어질 것이기에 시간은 짧게, 정리는 대충. 완벽히 하려고 하면 집안일은 끝나지도 않을뿐더러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성에 차지 않더라도 나름 보기 좋게 정리가 됐다면 멈추고 그날 아침 일상을 시작한다. (완벽한 육아와 집안일을 꿈꾼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혼란 속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지만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었다면 집안에서의 혼란이 더 길지 않았을까 싶다. 이 많은 물건을 언제 다 닦고 또 언제 그대로 정리하지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두세 시간 몸을 움직이다 보면 선반 위 먼지는 제거되고 물건도 보기 좋게 반짝였다. 차근차근 천천히. 한 번에 끝낼 욕심을 버리고 하는 데까지 하자는 느긋한 마음으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데 엄마 왜 이렇게 마요네즈를 잘 발라? 아이가 감탄한다. 응, 엄마 햄버거 집에서 일했거든. 엄마 양파도 잘 잘라. 다들 보며 얇게 잘 자른다고 칭찬 많이 받았어. 베이컨은 또 얼마나 잘 구웠는데. 엑설런트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어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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