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진실을 알려올 때
침대에 올라가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플라스틱 검으로 LED 등 깨기 시합을 벌이고(야, 더 단단한 게 필요해!) 고함을 내지르며 앞에서 옆에서 내 몸을 방패 삼아 숨바꼭질을 하여도.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스펀지 하나를 들고(저건 대체 어디서 찾아낸 걸까) 실험을 한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물바다를 만든 후에 물방울을 흘려대며 온 집 안을 돌아다녀도. 베란다에 서서 밖에 있지도 않은 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깔깔대며 웃어도(물총에 물을 받아 왜 밖으로 쏘는 거니)
우아한 백조의 몸짓을 나는 버리지 않았다. 얘들아 아래층에 누가 살지? 얘들아 집안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창밖의 새들이 다 놀라겠는걸.
남자아이들, 그래 남자아이들에 대해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강압적으로 말해 불만에 차서 그만두게 하기보다는 생각할 여지를 주는 말을 찾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고 깨닫게 하는 말.
지후는 우리 집으로 자주 놀러 오는 나도 친구이고 나도는 같은 반이 된 지후와 친해지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긴 시간 함께 있어도 두 아이는 싸우지 않고 형제처럼 다정하게 놀이를 이어가는데 집 안에서 놀이를 하다 보니 실내라는 장소의 한계에 부딪혀 ‘저 놀이를 어떻게 그만두게 해야 하나’ 고민을 불러온다.
너희 엄마는 화 안 내지? 지후가 나도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이성적이고 괜찮은 엄마라는 환상 속에 빠져 흐뭇한 순간도 있었으나 그 환상 속의 유해함을 알려주기 위해서인지 인생은 꼭 진실을 알려온다.
선풍기 앞에서 씨름을 하다가 한 아이의 발에 걸려 받침 부분과 기다란 대 부분이 분리되며 선풍기가 쓰러졌다. 헉하고 놀랐으나 침착하게 받침과 대를 홈에 맞춰 끼우며 얘들아 조심하자,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표현했다. 베란다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러 간다며 두 번째로 선풍기가 분리됐을 때 나는 상당히 경직된 표정으로(아이들이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조심해야지, 조금 큰 소리로 그러나 이성을 부여잡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아이들이 배를 훌렁 까고 선풍기 앞에서 손장난을 치다가 세 번째로 선풍기가 분리됐을 때
얘들아, 그거 비싼 거야!
드디어 나는 백조의 우아함을 벗어던졌다(벗어던질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사자와 호랑이가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