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자격증을 찾아가는 과정 2
꾸역꾸역 살아낸 증거가 하루 늦게 우편함에 놓여 있다. 하루 늦은 이유는 다른 지역에 섞인 등기 우편이 내가 사는 지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집배원이 전화로 알려 왔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십팔 년 만의 자격증 찾기인데 하루 늦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아이 낳기 전에는 '아이 친구 엄마'가 '엄마 친구'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와 비슷한 또래나 엄마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 엄마들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아이 낳고 키우는 생활을 십 년 이상 이어가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아이 친구 엄마들이지만(하는 이야기도 아이와 관련된다.) 아이의 시간표가 엄마 시간표이기도 하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시간이 엄마 개인 시간이며(대체로 나는 도서관에 간다.) 아이가 끝나는 시간에 집으로와 아이 간식을 챙기고 숙제를 시키며 저녁을 준비하고 정리정돈을 한다. 정리정돈도 나와 남편이 어질러놓은 것이기보다는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들이고 저녁메뉴도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이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한두 권 책을 읽으면(아이 책) 하루가 마무리된다.
둘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며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대충 계산해 보면 십오 년 만의 구직이다. 이 일자리도 아이가 저학년이기에 오후 2시 전에 마치는 일을 구한다. 책 읽으러 다니는 시간에 경제활동을 하겠다는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성취 같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역시 아이 시간표에 따른 것이다.
십 년이 넘게 집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하기에는 내 자아의 어떤 부분은 위축되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일 자체가 내 시간표에(아이 시간표에) 맞춰주지도 않는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어린이집 오전 보조교사다. 하루 4 시간 근무로 육아와 병행하기에 (그나마) 무리가 없다. 이 일 역시 아이가 어리다면 잦은 병치레로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머릿속 한 편에 자리한다.
<과거의 자격증을 찾아가는 과정> 기록에서 밝혔듯이 이 직업은 내게 멀리 있었다. 나중에 필요할 수 있으니 따 두거라, 는 교수의 말에 동의해서인지 아니면 그 또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인지 실습까지 경험했으나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결정짓고서 꾸역꾸역 그 시간을 견뎌나갔다.
지금은 아이들과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괜찮겠다는, 할 만하겠다는. 나로 인해 아이들도 성장하겠으나 나 역시 아이들로 인해 변해간다. 아이들로 인해 짓게 되는 미소와 눈물은 짜증과 피곤함은 사랑이라는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가기에.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모든 일이 발생한다. 이것을 체험하며 알아가는 것이 육아였다. 아이의 시간표가 내 시간표가 되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의 삶을 감내해 가는 것. 꾸역꾸역 견디던 시간도 쓸모 있어지는 것
우편함에 놓인 등기 우편을 열었다. 꾸역꾸역 살아낸 증거가 한 장의 종이에 담겨 내 손에 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