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떠올리다

십오 년 만의 출근길

by 북남북녀

십오 년 만의 출근으로 도착한 정류장에는 목도리를 두른 여성, 간절기 점퍼를 걸친 남성, 롱패딩을 입고 후두까지 썼는데 체육복 바지를 둘둘 말아 올려 발목이 보이는 학생 등이 있었다. 예전에 많이 보던 삼색 슬리퍼 신은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롱패딩에 손은 주머니에 꽂고 흰 발목 양말에 삼색 슬리퍼 신은 학생을 보면 내 발목이 시린 거 같았는데. 몇 정거장 되지 않는 거리나 막히는 구간이라 20분 이상 소요된다. 남편이 미리 알려주었기에 도착시간을 예상하고 집에서 출발했다.


몇몇의 성인과 학생 무리와 함께 버스에 오른다. 멍하게 서 있다가 줄을 늦게 서는 바람에 앉지는 못하고 앞자리 어디쯤에서 사람들 틈새로 손잡이를 잡고 바깥을 내다보는데 스피커폰으로 음악소리가 들린다. 검은 패딩 입은 학생이 팝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대다가 자기 이름인지 다른 사람 이름인지를 한 번씩 중얼댄다. 팝 음악이 흘러나오고 어느 지점에서 신유하! 이런 식이다. 창가 쪽 좌석에 앉은 학생이 보이는데 고개를 까딱 까닥하며 신나 보인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학생이 음악을 듣는 데 방해물이 아니다.

내 앞에 젊은 여성은 선 채로 책을 읽는데 집중하고 여학생 두 명은 작은 손거울을 꺼내더니 화장하기 시작한다. 그중 한 명은 야무지게 속눈썹 올리는 동그란 도구까지 꺼내 속눈썹을 들어 올린다. 음악 듣는 학생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은 말없이 앞을 바라보고 주변 남성은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미동도 없다.

나는 <말아톤>이라는 옛날 영화를 떠올렸는데 발달장애로 나오는 초원이 얼룩무늬에 집착해 치마 입은 여성에게 실수를 하게 되고 남자친구로 나오는 남성에게 맞는다. 어머니로 나오는 여성이 초원이를 발견하며 남성을 말리는데 말리는 어머니와 화난 남성의 모습에 소란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해명하는 말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를 초원이가 반복적으로 외치는 장면이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어머니의 눈빛

영화가 개봉된 건 2005년, 현재는 2025년이다. 암묵적인 이해를 품고 버스는 아침을 달린다. 가을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밖을 보며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에 귀 기울이는데 팝 음악을 반복해 듣던 학생의 폰에서 <모두 다 꽃이야>가 흘러나온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노래가 한번 흐른 후 학생은 다시 팝 음악으로 옮겨 갔으나 십오 년 만의 출근길 내게는 응원가이자 좋은 선물이었다. 단순한 선율과 가사에서 눈물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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