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by 북남북녀

건너편에 대학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이유인지 신호등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편의점은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 편의점 입구에는 병으로 된 음료 세트가 잔뜩 쌓여 있다. 평일은 저녁시간에서 밤 번 근무자가 오기 전까지가 내 시간이다. 주말 같은 경우는 아침에 밤 번 근무자와 교대해서 다시 밤 근무자가 나오기까지(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장 부부는 주말이면 언제나 일이 생겼고, 주말이라고 별다른 약속이 생기지 않는 나는 초과근무에 언제나 네,라고 대답한다.


편의점 계산대에 서서 도로가 차들의 움직임을 멍하니 구경한다. 겨울이면 따뜻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편의점은 쾌적하다. 비 오는 날은 바깥의 풍경과 우산 든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컵라면 하나를 데워 먹기도 한다. 전에 함께 근무하던 언니와는 비 오는 날이면 둘이 계산대에 서서 김이 올라오는 컵라면 하나를 놓고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이런 날은 한 잔 마셔줘야지. 종이 소주 컵에 한잔 따라 목으로 털어 넣으면서 좋다,라고 말하며 빙긋 웃던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는 서른 살 가까이 됐는데 국비로 진행되는 직업교육을 받고 있었다. 밴드 활동으로 키보드를 쳤는데 나이가 드니(버틸 만큼 버틴 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직업 교육을 마친 후 편의점으로 아르바이트를 왔는데 어느 날, 점장이랑 다투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그 이후로 점장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않아 현재는 나 혼자 근무 중이다. 한낮에 아르바이트하며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화번호라도 알아둘걸 가끔 생각난다.


가요든지, 팝이든지 사장 부부가 맞춰 놓고 간 주파수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은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편의점 속의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가만히 서서 계산을 하면 한 달에 한 번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온다. 커다란 금액은 아니어도 통장에 얼마라도 있는 것은 안심이 된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할 때 거절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며 회색 스님 복장을 한 남자가 들어온다. 기름기 있는 반질반질한 두상이 조명 아래서 반짝 빛난다. 50대 정도 됐을까. 남자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복주머니를 꺼내 계산대 위에 동전을 와르르 쏟아놓는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동전을 세서 지폐로 교환해서 남자에게 건네준다. 지폐를 받아 든 남자가 말없이 편의점을 나간다.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해지는 시간이면 찾아오는 손님이다.


승려복은 현세를 떠났다는 영적인 옷일 텐데 복주머니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동전은 현실적이라, 꿈속에 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는 기이함으로 그 동전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영적인 옷을 입든 지(현세를 떠나 출가하든지) 육체를 입은 사람은 물질의 세계를 떠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중부양을 하고, 뱀을 만지고, 작두를 타더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적게 먹을 수는 있어도 안 먹을 수는 없다.


고등학교 때, 다음 날이 시험이었다. 모르는 문제 앞에서 곤욕스러워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늦은 밤까지 갈색 둥그런 밥상에 책을 펴놓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가 아예 상위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눈을 퍼뜩 떴다. 멀리서 들리는 것도, 가까운 데서 들리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내 머리 위 공중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였다. “이놈아, 공부해야지!” 노인이다. 백발이 성성할 듯한 남자 노인.


나는 공포감에 빠져들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소리가 이빨이 달달 부딪칠 정도로 무서웠다. 이불을 펴고 얼른 누웠다.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지 생각하며 벌벌 떨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멍한 정신으로 시험을 치렀고 점수는 형편없었다.


편의점 안에서 밤을 밝히며 지나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승려복과 동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사는 동안의 일이다, 라는 생각이 얼핏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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