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통화를 해도 자연스럽게 30분씩 각자의 생활수다를 떠는 내게는 아주 특별한 제자가 있다. 누구든 어쩌다 생각나면 통화를 한다. 그녀는 가끔 억지를 피우며 자신의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 재미있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옳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내 곁의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잘 반성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다.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 카페에서 휴대폰의 모든 알림음을 무음으로 해놓고 검색창을 작동하려는 순간 전화벨 신호가 온다. 그녀이다.
"어디 계십니까?"
'카페에서 공부 중..'
"내가 제일 이해 안 가는 사람이네요"
'뭐가?' "공부하려면 도서관 가야지 왜 시끄러운 카페에서 해요?"
'시끄러우니까 나에게 집중이 더 잘되던데'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디스와 반박, 이해, 수긍, 인정으로 쿨하게 일단락된다.
남편이야기부터 자녀이야기, 세상살이 이야기.
난 그런 그녀가 늘 고맙고 자랑스럽다.
그런데 스승의 날인 오늘. 그녀 때문에 내가 작아진다.
요즘 여러 형편상 많이 힘든 그녀에게 내가 먼저 통화를 해야 하는데 스승의 날이라고 그녀가 먼저 전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냐고?"
"왜 카톡 보냈는데 읽지 않고 있냐고?"
"공부를 왜 시끄러운 카페에서 하냐고?"
1시간 이상 집중한 터라 바깥공기를 쐬어야 할 타임인데 때 맞추어 전화를 해주어 휴식시간을 벌게 한다.
그녀는 늘 그랬다. 욕심이 많아 시간에 쫓겨 사는 나에게 휴식하라고 경고음을 던진다.
스승의 날인 오늘 나는 아직 나의 스승들에게 바쁨을 핑계로 안부 인사 하나 못 전하고 있는데
모든 형편이 나보다 훨씬 복잡하고 힘든 그녀가 먼저 쿠폰과 함께 "축하드립니다"를 전한다.
쑥스러워 '됐어, 됐어. 그만 챙겨'를 큰 소리로 외쳤지만 허공에 메아리.
암튼, 그녀는 나를 '스승도 안 챙기는 스승이 스승의 날을 축하받을 자격이 있을 까?'를 반성하게 하며 명령하듯이 "스승의 날이니 즐겁게 잘 보내시오"라고 하며 통화를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