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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히다 Dec 30. 2020

즐겁게 가르치고 기쁘게 배우기(樂敎悅學)

상스러운 표현을 이해해주기로 했어요

중식시간이다.

밖이 춥다.

급식 대기 학생들이 복도에 길게 늘어서 있다.
간격 지키기와 마스크를 썼기 때문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야, 교장실 영어로 읽어 봐"

한 학생이 대답한다.


(학생들의 accent대로 띄어쓰기를 하면)

"프린스퍼~~얼"

다른 학생이 대답한다.

"프린스파~알"


"프린 스퍼~얼"


"프린 스파~알"


"프린 씨펄"


"프린 씨팔"


어머~ 얘들 봐.
내가 잘못 들었겠지.

발음을 가지고 난리가 났다.

박장대소하는 녀석에, 욕했다고 소리치는 녀석에,  "프린 씨팔"을 따라 하며 즐기는 녀석에

사실 이때쯤 나가봐야 하는 것 아닌 지...

즐거워서 '하하'대는 아이들을 어쩐다.
곧 즐겁게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고민이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일러 주어야 할 것은 일러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한다?

이 궁리 저 궁리하며 창가를 바라보다 보니 벽 쪽 액자에 樂敎悅學(낙교열학)이라고 쓰여 있다.

"즐겁게 가르치고 기쁘게 배운다"


즐겁게 가르치라?


교장실 문을 요란스레 쾅하고 열며 큰소리로 "친구들~ 안녕?" 하니
웃음소리와 반복된 발음으로 장난을 치던 친구들이 조용해진다.


교장실이 영어로 뭐냐고 물었어요?

"프린씨펄 오피스"
쳐다보는 아이, 웃는 아이, 고개 숙이는 아이. 아직도 장난기가 가시지 않은 아이 들.

용감하게 한 아이가 도전장을 내민다.

"그럼 교장은요?"
"프린씨펄"

또 다른 장난꾸러기가 용기를 내어 도전장을 내민다.
"그럼, 프린씨팔은요?"
일부의 아이들은 호호댄다.
"그건 웃음을 주려는 친구들이 마구 해대는 상스러운 표현."


"다음부터 그렇게 발음하고 싶은 친구는 이렇게 하기로 해요."
"프린씨팔 플러스 One"

"One이 싫은 친구는 Two를 넣어도 좋아요."
"어때요?"

아이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프린씨팔 플러스 One", "플러스 Two"라고 큰 소리로 따라 하며 달려간다.

식사 대기조의 급식실 입장이 시작되었나 보다.

일단 '즐겁게 가르치기' 성공.


사실 나는 이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동안 네이버 어학사전을 열어

아이들에게 좀 더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고자 "프린씨펄"을 여러 번 반복해가며 기쁘게 배웠다.

일단 '기쁘게 배우기'도 성공.


즐겁게 가르치고 기쁘게 배운 하루!


樂敎悅學(낙교열학)을 실천한 뿌듯한 오늘만큼은 그들의 상스러운 표현을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래. 그 시절에 굴러 다니는 말똥에도 웃는다고 했어. 재미없는 게 어디 있겠니.

그래도 친구들아~ 다음부터는 상스러운 표현은 빼고 재미있는 거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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