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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히다 Jan 11. 2021

소통 2(疏通)와 소통 6(자물쇠)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이 되지 않음'은 쌍방과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기분 좋게 한 세상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해."
"나는 나야."
당당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것도 많이.
기껏 기분 좋게 세상을 살려고 작정했는데

너무 이기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딜을 해댄다.
딜에서 져?
아니지.

지면 내 기분이 좋아? 나쁘잖아.
그럼 기분 좋게 질 수 있는 확률은?
희박.

안 해봤잖아?
아니. 수없이 보아왔어.
그는 모든 사람들과 늘 그랬어.
남을 기분 나쁘게 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더군.
게임 끝. 지는 거야. 그냥.
그냥?

왜?

어차피 이기든 지든 내 기분만 나쁘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야.
방법이 없어.
그랑 겨루는 것은 소모전이야.
지고 이기는 것은 어느 정도 소통(疏通)의 수준이 맞을 때 일어나는 상호 대전 아닌가.
그러니 포기라고 하지.

포기.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필요한 거 아니야.
맞아. 그는 배추야.
그렇게 나는 오늘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을 배추로 취급해버렸다.

이름하여 '너는 나의 아웃사이더 1호'


네이버에 물었다.
소통 알려줘!


그 사람의 소통이란

경상도에서 쓰였다는 ‘자물쇠’의 방언인 소통 6이겠지.
'닫혔어, 닫혔어'


그러면 나의 소통(疏通)은?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고 있었나?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었나? 

에이 ~. 나도 아니잖아. 


사람은 참 이상하지.
몹시 자기중심적이야. 그런 것 같지.
나와 반복적으로 이견이 생기거나 나의 뜻이 수월하게 고찰(살펴주지 않는다는 뜻의)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그와는 소통이 안돼. 그는 불통의 아이콘!'이라고 포기하거나 단언해 버려.
마치 자기는 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처럼.



'소통이 되지 않음'은 쌍방과실이야.
어느 한쪽에서 전혀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자 하지 않아서 생길 수도 있지만
양쪽 모두에게 이견을 좁힐 여지가 없어서 생길 수도 있는데 말이야.

상대에게 느낄 때 이미 나에게도 소통 6 '자물쇠 소통'이 있지 않을까? 

먼저 되짚어 보는 성찰이 필요한데 말이야.

앞으로도 우리는 쭈욱 소통 2(疏通)와 소통 6(자물쇠)을 같은 소통으로 치부하며 살겠지.
그러나 분명히 해둬야 해.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소통 6(자물쇠)이면서 소통 2(疏通)로 착각하지 않도록.

테스 형이 그랬다니까.
'너 자신을 알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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