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고양이자매에게_ 어쩔 수 없을 때는 어쩔 수 없다
이사하지 않는 집을 꿈꾼 이유는 단하나였다. 우리 고양이들이 나이 들어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집, 영역을 통째로 바꾸지 않아도 되는 집을 주고 싶었다. 나이가 열 살이 되면 슬슬 노년으로 가는 과정이기에 살던 곳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친구들과 집을 만들 계획을 하며 안 되는 계산도 해봤다. 계획할 당시의 은행과 경제, 사회, 일하는 조건들이 얼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집을 완성하고 입주할 즈음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변하고 계획은 와르르 무너졌다. 역시 계획은 믿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계획은 세워 놓는 것이지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이뤄지지 않는 속에서 찾아올 변수와 다른 결과들이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깊은 감정, 관계를 연결하기에. 계획은 지금을 계속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나한테는 그렇다. 역시 그렇군이라는 새로운 경험의 결과를 맞이했다.
2년 8개월을 보낸 스르르 주택.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반겨줄 그 집에 종종 놀러 가 술도 한잔할 예정이고 지척이라 집을 돌봐야 하는 날이 오면 얼른 뛰어가서 살펴도 볼 예정이다. 만들고 첫 살림을 한 사람이니까 입주한 사람을 도와줄 마음은 열려 있다.
스르르 주택을 가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사를 다녔을 테니 미안하지 않으려 해도 이사하고 천지개벽, 천청벽력 영역이 죄 흔들려버린 우리 고양이들에게는...
고양이들은 오래 한 집에 살아도 자기 영역을 매일 매 순간 재구성한다. 내가 자는 침대가 아무리 넓어도 방석이나 다른 이불로 구분하지 않으면 영역 침범이라 느껴 다가오지 않기도 한다. 여러 고양이랑 같이 사는 고양이 가족들은 매일 영역이 다른 고양이들의 삶을 지켜주느라 집안이 온통 바구니, 스크래쳐 작은 숨숨집들이 여러 개일 것이다. 애들 놀기 좋으라고만 두는 것이 아니다. 애들이 A4 한 장 위도 영역이라 느끼기 때문에 바닥에 둔 종이 한 장 위에도 앉아본다. 귀엽게 보이는 그 습성은 완전한 야생 본능이다.
이런 애들의 삶을 순식간에 흔들고 위기를 선물하는 과정이 이사이다.
냄새도 다르고 공간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려고 애쓴다. 이전 집의 창턱 밑 책장이 있었다면 이번 집에도 그렇게 하고 침대 근처 캣타워가 있었다면 역시 그렇게. 침대에는 같은 이불과 방석을 둔다. 식탁 근처에 머무는 아이들을 위해 비슷한 의자와 스크래쳐를 둔다. 최대한 창가 창문을 열어두어 밖을 볼 수 있게, 무엇보다 내가 옆에 있어서 안심하도록 책상을 배치했다.
사흘은 둘이서 새벽까지 여기저기 다니다가 자는 나를 깨워 항의를 했다. "와아아아앙!"
그리고 다시 자기들이 있던 자리 비슷한 곳에 가서 확인하고 없으면 나를 밟고 깨우고 누르며 "와아아아앙!" 나에게 어떻게 들리는가 하면, 이게 왜 없어, 여기 왜 턱이 없는 거야, 이건 뭐야, 이상해해해해애애애. 당황한 고양이 자매 아띠와 루카를 달래려 며칠 연속 츄르를 대령하였다. 일주일 사이 가구를 제법 다 들여서 애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더 확보하고 널려있는 짐들을 공간별로 마구잡이 다 집어넣어 정리를 대충 했다.(아직 책 정리는 시작도 못했고, 베란다도, 거실 커튼도 못 달았지만)
나를 위한 정리는 아직 하세월이지만 2주일 사이 아이들을 위한 정리는 다했다. 그 사이 고양이 자매는 적응했는지 바닥에 누워있기도 하고 싱크대와 식탁에 올라와 누워있기도 한다. 밥 자리 각자 정한 곳도 익혀서 새벽에 밥 달라 깨운다. 일주일 밥을 영 안 먹어서 살펴보고 있었는데 역시 장소에 익숙해지니 밥도 좀 편히 먹는다. 휴~ 한시름 놨다.
이 와중에 대통령이 군인을 동원해 세상을 흔들어서 내 일상도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급박한 열흘을 보내고 나도 쉬는 하루를 맞이했다.
새벽에 자다 깨니 아띠가 이불속으로도 들어온다. 내 곁에서 푹 자는 녀석의 엉덩이를 쓰담하며 빨리 적응해 줘서 고맙다인사를 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엉덩이를 내 쪽으로 돌리고 자는 루카에게 이마를 기대며 그래그래, 여기가 너의 잠자리야 하고 쓰담쓰담. 삐요오옹, 미요오옹 잠결에 답하는 루카와 그릉그릉 몸으로 응해주는 아띠. 이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고양이들 몸과 접촉해 확인한다.
이사 정리와 적응은 대략 2주일 정도면 끝난다. 항상 그랬지만, 그 기간은 나도 적응 중이다. 집안에서의 동선을 정리하고 맞게 짐을 재배치하고 바꾸고 이렇게 한 달을 보낸다. 남은 2주일 동안 나를 위해 이사 정리를 하면 된다. 비어있는 책장에 책을 정리해서 다시 꼽고 아니다, 일단 미싱을 꺼내서 커튼 천을 밖아야 한다. 한겨울이 코앞이라 제일 큰 베란다 창 바람을 막는 일이 최우선.
아이들의 적응이 끝나고 계엄과 탄핵과 같은 일상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을 밀어내고 마음이 안심이 되니 느긋 게을러져 언제 짐 정리 마무리를 할꼬.
끙차, 일단 오늘부터 다시 매일 양치부터 시키고 하나하나 해볼 밖에. 12월 안에는 다 할 것이라는 막연한 계획과 믿음으로.
2024년 12월 16일 이사한 집에 적응하는 고양이와 나
(12월에는 연재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고양이들과 이사하고 나니 대통령께서 큰 일을 벌리셔서 정신이 혼미했다. 따박따박 쓰기를 이어가는 연말과 새해맞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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