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고양이자매에게_새벽, 고양이와 눈으로만 대화하기
나이 얘기, 생애주기 어디 즈음에 있는지 자주 밝히고 싶지 않지만 사는 얘기 하다 보면 피실 피실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야 불가능하겠지.
여튼 나는 빨리 갱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계절별로 몸이 바뀐다. 모든 생명체처럼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이 장기의 핵심 기관이고 일상을 잘 돌아가게 하는 호르몬이 연결되어 있다. 갱년기는 생명체를 생산하는 기능을 빼기 위한 몸과 마음의 완전한 재구성이다. 호르몬이 불균형해지기 때문에 정서적 이상 반응, 우울증, 화와 신경질 등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태가 빠지기 십상이다. 또 어느 날은 친구에게 아, 나 오늘 정말 수치스러울 정도로 땀이 났다고 고백할 정도로 온몸에 땀이 줄줄 난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잠을 푹 자기 때문에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던 숙면 시스템이 깨진 것. 일찍 자도 늦게 자도 새벽 2~3시에 눈이 반짝 떠진다. 땀이 줄줄 흐르거나 오한이 나거나 건조함을 강렬하게 느끼거나. 한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을 냈는데, 대상이 나 밖에 없으니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잠이 들기를 기다리며 새벽을 보냈다. 이 타임에 책을 보거나 영상을 보면 완전히 각성이 되어버리니..
불쑥 잠이 깨어 난감한 나를 반기는 새벽 친구들이 있다. 속도 모르고 내가 일어나서 마냥 좋은.
좌 아띠 우 루카. 특히 루카. 내가 눈을 뜨면 자기들과 놀아주거나 아침이 시작된 것처럼 반긴다. 뒤척이면 벌떡 일어나서 침대 밑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 까만 덩어리 녀석의 올라간 꼬리 때문에 피식 웃으면서 물이라도 먹자고 잠깐 내려갔다 온다. 그리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밀어서 자러 가자고 한다.
똑띡이 아띠는 몇 번 내가 일어나도 침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더니 누워있는 자리에서 고개만 잠깐 빼꼼하고 기다리고 있다. 털썩. 그녀 앞에 고개를 들이민다. 깜짝 놀라지만 밤의 힘 덕인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도 은하수 초록색 우주가 가득 찬 아띠의 눈을 빤히 본다.
우리는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를 보고 있다가 손 끝을 내밀면 살짝 핥아주는데 얘가 뭐를 알고 나를 위로하나 싶다. 그럼 쓰담 쓰담. 옆에서 루카는 질투가 나 아웅 아웅 하고 새벽이 참 시끄럽다. 덕분에 갱년기 우울증에 깊이 빠지지는 않고 있다. 하하하 웃으면서 두 손으로 녀석들을 쓰담쓰담하다 잠이 든다.
어릴 때 주인집 할머니의 고양이들이 여러 번 바뀌는 마당이 있었다.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도 좋았지만 특히 눈동자를 좋아했다. 고양이들마다 컬러가 다른 눈동자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우주의 행성 같았다. 망원경으로 찍었다는 우주의 성단들이 고양이 눈과 다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고양이들 입양을 준비하면서 노란색, 호박색, 초록색 눈동자들의 고양이들을 살펴봤지만 우리 집에 올 아이들의 눈동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들은 4~5개월까지 대부분 파란색 계통이다. 그러다가 청소년 고양이가 되면 털색깔, 멜라닌 세포에 따라 달라진다. 눈동자가 파란 아이들은 멜라닌 세포가 거의 생성되지 않는 경우이다. 즉 털색깔이 화이트인 고양이들이 눈색깔이 파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검은 털의 아이들은 노란색이나 짙은 호박색일 확률이 높고 털이 섞인 아이들은 다양한 컬러를 갖는다. 우리 아띠는 테비라고 하는 고등어줄무늬 고양이로 노란색+호박색 베이스에 녹색이 섞여 있다. 턱시도 고양이인 루카는 대부분 털이 검은색이어서인지 눈빛이 짙은 노랑이다.
처음에 왔을 때 이런 정보가 없다 보니 애들이 청회색이어서 신기하네 했다가 점점 바뀌는 컬러에 존재의 신기함과 찬사를 보냈다. 생명체란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코앞에서 성장과 변화를 목격하는 과정이었기에. 10년 같이 살면서 어려움도 있지만, 인간 외의 생명체, 대자연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기회를 스스로 선택했다 칭찬한다.
집에 오면 내 옆의 생명체가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말해준다. 인간으로 왔지만 역시 대자연 속에서 왔고 내가 돌아갈 곳도 결국은 대자연이다. 아무리 고층 빌딩을 지어도 빼곡하게 아파트와 콘크리트를 발라놔도 사람과 동물 똑같이 태어나서 몫을 다하고 간다.
불교나 종교에서 하나의 우주가 인간에게 있다고 한다. 맞습니다 맞고요 하기에는 인간은 이상한 짓을 너무 많이 하는 존재라 우주가 있으면 뭐 하나 지구에 해악만 끼치고 있는데 혀를 끌끌 찬다. 한심한 인간으로 살다 털투성이 두 아이의 눈을 보면 아, 생명체란 이렇게 하나의 우주구나 깊이 느낀다. 그래, 인간이 괴이한 존재이긴 하지만 멋진데도 있지. 죽을 때까지 멋짐을 갖고 살자 이런 마음을 다독다독.
내게는 두 개의 우주가 있으니, 노란색 성단을 가진 루카라는 검정 턱시도 고양이와 은하수 별무리를 가진 회색 줄무늬 아띠. 그들 덕분에 내 소속이 우주라고 좋아한다.
나는 우주에 소속한 지구별에 사는 삐삐이다. 그렇지 얘들아?
(2024년 11월 18일 다시 연재 글을 쓰기 시작한 날, 아침부터 아이들과 아이컨텍하고 맘이 촉촉)
#아띠와루카 #고양이자매 #고양이 #cat #catsisters #고양이눈 #고양이눈색깔 #검은고양이 #턱시도고양이 #고등어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