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편집

내가 생각하는 나와 보여지는 나

by 피라

대학에서 6시간 면접교육동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촬영이나 편집은 잘 모르니 한 방에 찍은 무편집본을 보내주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간단히 12개의 큰 카테고리만 만들고 바로 시작했다. 영상을 촬영하고 결과물을 모니터링했다. 수정하고 보완할 것들이 있지만 그럭저럭 공개할 정도는 되니 오리지널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한 장면은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강의 시작 때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장면. 처음 본 낯선 나의 정수리가 화면에 적나라하게 클로즈업되었다. 2003년 나바호족 보호구역 오지에 머물던 때가 떠올랐다. 애리조나주 작은 도시 카엔타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곳. 사방팔방 인간의 흔적이 없는 황량한 사막에 80대 인디언 노부부만 살고 있던 곳. 아메리카 원주민의 생태적 가치의 흔적을 찾겠다고 호기롭게 찾아간 곳. 모래 사막이 아니라, 메마른 땅에 키 작은 관목과 생명력 강한 질경이같은 풀만 듬성듬성 나 있는 애리조나 사막. 나의 정수리는 애리조나 사막이었다. 초라하게 버티고 있는 드문드문한 머리카락 사이로 훤하게 보이는 황갈색의 피부. 나는 몰랐다. 나의 정수리가 그런 모습인 줄. 자신의 삶에 뭔가 도움될거란 기대를 안고 나의 영상을 보는 학생들에게 양해의 말도 없이 시작부터 냅다 그런 정수리를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장면, 정수리가 나오는 장면만 지우든지, 영상을 다시 찍든지. 시간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편집만이 살 길이었다. 영상 편집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부심 담긴 편집을 위해 혐오스런 정수리를 뚫어지게 보고 또 봐야 할 누군가를 생각하면, 아무도 모르게 내가 해치워야 할 일이었다. 그게 인간적 도리였다.


몇 가지 프로그램을 돌리며 버벅거리다, 드디어 오늘 새벽 깔끔하게 해치웠다. 자긍심과 안도감으로 잠시 쉬다 보니, 한 생각이 밀려든다. 과연 정수리뿐일까? 나의 모습인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정수리뿐일까?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뒤통수, 뒷모습, 나의 습관, 나의 말, 표정, 행동은 얼마나 많을까? 나의 생각과 감정은 또 어떤가? 알고 있더라도 내가 상상하는 것과 보여지는 실제의 모습은 또 얼마나 다를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세상에 보여지는 실제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내가 생각하는 내가 진짜 나인가? 나도 모르게 세상에 보여지는 내가 진짜 나인가? 내가 정의하는 나의 삶과 세상에 구현되는 나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나의 정수리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학교 대표로 용두산공원에 사생대회를 나갔을때, 쪼그리고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아버지가 몰래 찍은 사진에서 처음 나의 정수리를 보았다. 지난 세월 동안 내 정수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관심도 없었다. 몇 가닥 머리카락으로 두피를 장식하려고 애쓰는 답 없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대머리로 밀어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정수리는 말한다. 나는 너와 함께 존재했고, 나는 너와 함께 계속 변해 왔다고. 나는 곧 너라고. 예전 모습에 집착하든, 미래의 모습에 절망하든 삶은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변화 자체를 아는 것만으로도 삶의 문제 절반은 해결될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글쎄다.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크게 놀라는 것보다는 변화를 알고 변화를 다룰 줄 아는 삶이 더 나을 것 같다.


오늘 학교에 동영상을 보낸다. 조금, 아주 조금 편집한 동영상을. 편집한 부분이 자연스럽지 않다. 나는 안다. 삶에서 내가 신경 쓰는 것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관심 가지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는다는 건 때로는 절망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축복이기도 하다.


출근 길에,

내면의 자아가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이번 기회에 유튜브를 해봐. 고개 숙이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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