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by 피라


나뿐 아니다. 우리 시대를 산 모든 이들에게 그 이름은 DNA의 한 조각, 육체의 한 부분, 정신의 한 조각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 이름 세 자는 권위와 힘의 원천이었다. 아직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었다.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아이, 힘을 가지고 싶은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자랐다.



계절을 알아갈 무렵, 힘 센 이를 향한 비판과 풍자는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의 장식품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그의 이름은 조롱과 멸시,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그의 이름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창과 문이었다.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통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렴풋이 상상하며 자랐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가 세상의 시작과 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알게 해줬다. 그리고 또 어떤 세상은 바뀌는 척만 해도 아무 일 없이 지탱 된다는 삶의 기술을 알려주었다. 그는 연기와 퍼포먼스의 힘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대학시절, 이 사회 문제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의 이름 세 자는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잘못된 세상의 상징이었고,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할 이유였다.



30대 시절, 그는 아무리 근사하고 원대한 목표, 다수를 위한 일이라 할지라도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알게 해주었다. 세상에 향해 품는 열망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했다.



40대 시절, 그의 이름은 내 안에 나무가 되었다. 싫든 좋든 서로 뒤엉켜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환경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는 두려운 공존을 말했다.



50대 시절이 시작되던 해, 그가 죽었다. 그의 이름을 가슴에 새긴 아이들은 거사를 치른 그의 나이가 되었다.



그의 이름 세 자와 함께 살아온 긴 세월, 그의 이름을 문자로 적어보는 건 처음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란다. 그런 사람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란다.

그런 생각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란다.

모두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그런 역사도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란다.




전두환,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았던 한 시대의 상징이 죽었다.

홍길동이 건너가 살았다는 오키나와, 류쿠왕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자신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항복을 했다는

류쿠왕국의 왕.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왕도 죽었고,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내어 놓은 왕도 죽었다.



다시는,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강제로 희생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는,

고상하다 여기는 목적을 위해 비천하다 여기는 존재를 수단으로 삼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잘가라.

나를 만들었던

내 안의 찌꺼기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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