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라


옛날, 첫 직장에서의 일은 많았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 날 저녁 9시까지 꼼짝하지 않고 일한 적도 있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에 의미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싫든 좋든 그냥 하는 것이 일이라고 했다. 일의 유일한 기쁨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함이라는 일의 역설이 내 삶 전부가 되는 상황이 두렵기도 했다. 그 시절 퇴직하고 싶다는 내게 팀장이 해 준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할부로 자동차를 사, 할부금을 내어야 할 동안은 회사에 다니게 될 거야. 결혼하고 대출받아 집을 사,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 회사에 다니게 될 거야. 아이를 낳아. 아이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까지 회사에 다니게 될 거야! 나도 그렇게 살아. 주위를 봐, 모두 다 그렇게 살아."


그럴듯한 관념적 말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공감은 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 개근했던 역량을 발휘해 몇 해 더 출근했다. 벚꽃이 움트는 어느 봄날 아침, 출근 준비 끝내고 날씨를 보려고 기숙사 창문 앞에 섰을 때, 한 문장이 시처럼 떠올랐다. '오늘은 퇴직하기 참 좋은 날이구나!'


벚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벚꽃이 거리에 떨어질 무렵에 마지막 출근을 했고, 그 뒤로 벚꽃이 스무 번 가까이 피고 졌다. 그동안 회사를 그만둔 걸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그 시절을 자주 돌아본다. 퇴직의 결정이 아니라, 왜 그때 일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느냐는 아쉬움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처럼 그때 하던 일의 통찰적 의미를 발견했더라도 언젠가는 그만두었겠지만, 그때 일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일하는 동안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 텐테 하는 아쉬움이다.


학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직무역량을 역설한 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다. 직무는 곧 일이다. 오랜 세월 직무 역량이 중요하고 직무 역량이 취업의 모든 것이고, 직무역량을 갖추는 방법을 말해 왔지만, 나 자신부터 정작 일이 무엇인지 깊고 넓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3년 전부터다. 어린아이가 자라 자기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이 무엇이든 의미를 찾는 데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젊은 시절 그토록 내가 갈구하던 일의 의미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 일에 관해 공부하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행복한 결말로 끝나면 우리는 울고 웃으며 다 잘되었다고 여기지만, 진짜 시작은 그다음부터다. 그렇게 감동적인 해피엔딩은 기나긴 공부의 보상과 같다. 멜로물의 행복한 결말은 원하는 회사에 드디어 취업한 기쁨과 비슷하다. 그 이후에 주인공의 삶은 우울증, 공황 장애에 시달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긋지긋한 무기력으로 박제된 일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창업이든 취업이든 학생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일을 할 때, 그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았으면 한다. 주어진 일의 의미가 아니라,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을 알면 좋겠다.


일은 곧 삶이다. 일에서 발견하는 의미와 가치가 한 사람을 삶을 이끌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학생들이 사회에 첫발을 디딜 무렵 한 줌 일의 의미도 찾지 못해 나처럼 번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일의 내용과 조건, 방법에 대해서는 고민하더라도 적어도 일이라는 상황을 이해 못 해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한다.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책상에 엎드려 학창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처럼, 일이 없어서, 일에 치어 세상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시들해지는 삶이 줄어들면 좋겠다. 꽃이 아니라 나무라는 걸 알면 좋겠다. 비바람에 피지 못하고 떨어지는 한 계절의 운명을 자신의 전부라 여기는 꽃봉오리가 아니라, 내년 봄에 또 꽃을 피우기 위해 고요히 빗물을 빨아들이는 나무. 떨어진 자신의 꽃봉오리도 자양분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섬세한 뿌리를 지닌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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