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잠시 걷는 일상의 행동이든, 중요한 프로젝트든 의미를 느끼는 건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의미를 추구한다.
의미가 삶에서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의미를 찾고 싶은데,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롭다면 의미 찾기를 잠시 내려 놓는 것도 좋겠다. 의미를 찾지 않는 시간을 통해 의미가 스스륵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의미가 있는데, 그걸 실현하기가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괴롭다면, 다른 의미를 찾는 것이 좋겠다. 의미 때문에 삶이 괴롭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니까.
내가 추구하는 의미가 너무 대단하게 여겨져, 그런 의미를 추구하지 않은 타인을 하찮게 여기고, 타인들에게 나의 의미를 강요한다면, 그런 의미가 과연 의미 있는 것일지 돌아봐야 한다. 의미는 찾고 안찾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의미를 통해 나와 세상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런 상호작용의 과정과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 그것이 진짜 삶의 의미다.
지난 일이 떠오른다. 난 한때 채식주의자였다. 2002년 스콧니어링자서전이라는 책을 덮으며 채식을 결심했다. 그 뒤로 10년을 채식했다. 비건으로도 4년 넘게 살았다. 동물들이 너무 불쌍했고, 이 세상의 가장 약자인 동물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한 참 채식에 빠졌을 무렵에 퇴직했다. 퇴직 후에 할 일도 정했다. 포천에 애신의 집이라는 유기견 보호소가 있었고, 유기견들이 400마리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들에게 사료를 주고, 똥을 치울 사람을 구했다. 외국인 노동자 한 명이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곧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급이었고, 난 그곳에 동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 삶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차를 몰아 포천으로 내려갔고, 현장을 살펴본 후, 곧 퇴직 후 일하겠다고 말했다.
퇴직 후 계획을 물어보는 팀장에게, 개똥 치우기라는 퇴직 후의 원대한 계획을 말해주었다. 팀장은 울상을 지었다. 제발 그 일만은 하지 말라 하셨다. 난 내가 의미를 두는 일의 가치를 모르는 회사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 않고, 그것이 이곳을 떠나는 이유라고 말만 했다. 포천 방문 후 7시간 넘게 운전하며 부산 집으로 내려가던 그 날 차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어두워지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도시의 비인간적인 조명이 참으로 따뜻하고 애틋하게 여겨졌다. 30년 넘게 내 삶에 영향을 미쳤던 경쟁, 성취,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과 이별하고 혼자 개들과 지낼 생각을 하니 무의미한 것들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생전에 가장 싫어했던 것들조차 너무나 그립고 애틋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무의미한 것들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삶이 지겨워, 나만의 의미를 찾아 그 의미에 삶을 바치기로 결정을 하니까, 무의미했던 것들도 의미 있게 다가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경험했다. 세상에 필요한 의미와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다 결국 포천에는 가지 않았고, 대신 더 나은 의미를 찾는 긴 여행을 택했다. 여행은 아직 진행중이고, 죽는 순간까지 여행자로 남지 싶다.
30대에 찾던 의미와 비교하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그때는 나만의 의미였고, 지금은 나와 세상의 의미다. <진실은 당신과 나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처럼 각자 삶의 의미도 나와 세상(타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개똥 치우는 일처럼 나만의 의미를 찾는 일보다는 나와 세상의 의미를 연결 짓는 일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SNS 세계는 좋아요와 싫어요로 구축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알고리즘 또한 좋아요와 싫어요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순간순간 입력되는 수많은 정보에 우리는 좋아요와 싫어요의 태그를 붙이는데 익숙하다. 좋아요는 의미있음으로, 싫어요는 의미없음으로 연결된다.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의미를 찾는 과정이 좋아요와 싫어요, 의미있음과 의미없음의 태그를 붙이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된다. 의미 있는 의미란 좋아요와 싫어요의 사이, 의미있음과 의미없음의 사이 어딘가에서 피는 꽃과 같기 때문이다. 내 삶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배제하면 안된다. 그 순간은 선명해 보이지만, 곧 모두 불행으로 빠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선거 날이다.
누가 당선되어도 좌절, 분노, 실망을 느끼는 사람과 기쁨, 안심,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결과를 좋아요와 싫어요로의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의 좋음과 너의 싫음, 나의 의미있음과 너의 의미없음을 넘어서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들과 너희들 사이에서 힘없고 약해서 고통 받는 존재를 위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 정치가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선거 결과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도, 기뻐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의미란 공기 같은 것이니까. 어디에 있던 나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정치인의 본질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 이타성이라고 믿는다. 바라는 누군가가 당선되지 않았다면, 그가 진정으로 그렇게 믿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