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에서 여름 사이에 제주도에 머물렀다. 관광객이 되어 스쳐 지나가며 본 제주와 시간이 남아 돌아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제주도는 많이 달랐다. 그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돌담이었다. 돌담을 경계로 이쪽에는 초록의 보리밭, 저쪽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 당연한 풍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밭과 바다를 연결하는 돌담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보리밭은 현실이었고, 바다는 이상이었다. 돌담으로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만들어 나만의 터전을 갖고 싶었다.
그때, 조천읍 중산간 초입에 1,800평 땅이 있다고 지인이 알려주었다. 궁금해 견딜 수 없었어 차를 몰았다. 풀과 나무가 무성한 땅에는 바위도 있고, 큰 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그날 계약금 500만원을 입금한 후, 꿈을 꾸었다. 그 땅에서 홀로 지내며 혼자 힘으로 조금씩 조금씩 집을 지어가는 꿈을. 젊었기 때문인지, 스콧니어링 자서전 같은 책에 심취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밤마다 집 짓는 상상을 했다. 터를 파고, 돌을 깔아 기초를 단단히 하고, 나무를 깎아 기둥과 구조를 만들고, 진흙과 돌로 벽체를 만들고, 서까래를 얻고 너와와 진흙을 이용해 지붕을 만드는 과정을 머리 속으로 그렸다. 3년 정도면 혼자 힘으로 멋진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었으니 혼자서 천천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지질학이란 압력과 시간의 문제'라는 주인공 엔디의 독백이 나온다. 압력과 시간은 에너지를 다루는 두 축이다.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건 압력의 한계를 시간이 극복한 사례다. 전동드릴은 시간의 한계를 압력이 극복한 사례다. 결과물을 만들어낸 시간이 다를 뿐, 바위와 콘크리트를 뚫는데 투입된 에너지 총량은 비슷할 것 같다. 한 조각의 돌을 만들어 내는 일, 탈옥, 원고, 동영상, 오늘 처리해야 할 일, 장기적 사업 계획과 같은 삶에서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결과물도 압력과 시간 문제 같다. 어떤 자원을 이용해 어떤 집중력으로 얼마나 힘을 쏟을까의 문제. 삶도 일도 에너지의 문제, 에너지를 어떻게 다룰까의 문제 같다.
굵고 짧게 산다느니, 가늘고 길게 산다느니 하는 말도 한정된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 같다. 내게 주어진 에너지를 현명하게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채워가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타고난 기질처럼 저마다 갖고 태어난 배터리의 용량이 정해져 있더라도, 배터리를 얼마나 잘 충전하며 사용할지는 개개인에게 달린 것 같다. 조건과 상황이 운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상황을 다루는 방법이 운명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오래 전, 제주 집짓기 프로젝트는 무산되었고, 그 뒤로도 오래 동안 때때로 혼자 집을 지어 혼자 사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접은 건 2010년쯤이었다. 그곳은 해남이었다. 3,800평의 땅에 이미 집이 있었다. 집이 있으니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그 집 안에서 오랜 꿈을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실컷 보며 혼자 사는 일상. 꿈이 곧 이뤄질 현실이 된다 생각하니 뭔가 허전했다. 그땐 잘 몰랐지만, 요즘은 그 허전함이 무엇이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같은 몇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라는 존재. 우리를 귀찮게 만들고, 짜증과 화의 원흉, 도시 생활의 공기, 미세먼지 같은 존재. 한 때는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었고, 한때는 식상해 거리를 두고, 가려서 만났던 사람들. 압력이 사라진다 생각하니 일상이 진공 상태처럼 느껴졌다. 압력은 사라지고 시간만 남은 상태, 허전함의 정체였던 것 같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살아있다는 건 에너지가 있다는 뜻이고, 좋아하든 싫어하든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걸. 좋은 에너지든 나쁜 에너지든 그 에너지를 내 삶과 세상에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라는 걸. 그 에너지를 다루는 일은 운명을 만드는 일이라는 걸. 다루는 방법에 따라 인생은 충전도 되고, 방전도 된다는 걸.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삶은 어디로부터 흘러 들어온 에너지를 어디론가로 흘려보내는 과정 같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flow도 이런 의미와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찾고, 가치 있게 흐름을 만드는 일. 그게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래 전 내 집 짓기를 꿈꾸듯, 혼자서 모든 걸 다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지구는 인간의 집이고,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