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어린이병원장이었던 사촌형은 국내 소아신경학계에서 저명한 교수다. 가끔 그와 만나면 육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육아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내게 육아는 둘 중 하나다.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과 알면서 그렇게 하는 것. 결과는 항상 똑같다. 이전의 내 방식대로 한다. 육아는 아이에게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인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어렵다.
사촌형과 나눈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토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아토피 발생의 첫 번째 조건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라고 했다. 그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옆집 아저씨가 그런 말을 했으면 별 시덥잖은 소리를 한다며 흘려 들었을텐데, 한국은 물론 국제학계에서도 알아주는 의사가 한 말이라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계속 기억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누구의 말이냐가 아니라, 어떤 말이냐로 의미를 따지라고. 난 아직 그게 잘 안 된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첫 직장이었다. 반도체 생산 공장과 똑같은 LCD 공장의 크린룸은 먼지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깨끗한 환경이다. 그런데 그런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여러가지 건강 문제가 생긴다. 가끔 다루는 유독 물질 때문인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 때문인지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건강 문제는 면역 시스템의 문제다. 면역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자이글러는 이렇게 말한다. "면역계가 일을 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세균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세균을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극단적으로 청결을 추구하는 강박이 있는 사람)이 정기적으로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되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건강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이 더 나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생물이 많지 않은 환경에 사는 사람은 천식이나 알레르기, 감기와 같은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에 걸리기 쉽다.
인간의 면역계는 어떤 분자가 위험한지, 또 어떤 분자가 위험한 병원체의 일부인지 모른다. 그저 우리 몸과 다른 분자를 인식할 뿐이다. 따라서 해롭지 않은 미생물에 대해서도 병원체와 같은 면역 반응이 일어날 수 잇다. 무언가에 긁히거나 베일 때마다 상처를 통해 침입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접종을 효과적으로 받고 있는 꼴이다. 반려동물과 놀아줄 때, 자전거를 타다 넘어질 때, 정원을 가꿀 때, 키스를 할 때 등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미생물은 우리 몸속에 침입한다. 거의 모든 음식에 세균이 있고 숨을 쉴 때도 세균과 곰팡이 포자가 몸으로 들어온다. 바다나 호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도 미생물이 침입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미생물은 대부분 인간에게 해롭지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끊임없이 '예방 접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완벽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제약회사가 제조하거나 정제한 분자를 의사가 주사해서 예방 접종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스켑틱, David Zeigler, 이보은 역)
위 글을 읽으면 적당히 더러운 환경이 아토피 예방이 도움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생각과 마음에도 면역 시스템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일단 거부감부터 생기는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같은 생각만 하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듯 하다. 세상을 좋아요와 싫어요로 양분하는 시대다. 좋아요만큼은 아닐 지 모르지만, 싫어요도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싫지만 운동하는 것이 건강에 좋듯, 싫어하는 것들에 의해 우리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