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예전에는 뭔가를 사기 위해 한 참을 검색하곤 했다. 요즘에는 쇼핑도 잘 하지 않을뿐더러 선택에 쏟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한다. DSLR에 빠졌을 때는 카메라 정보에 빠져 살았다. 내게 딱 맞는 좋은 카메라를 사면 좋은 사진을 찍을거라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했다.
우리는 선택이라는 신화에 빠졌다. <삶은 선택>이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라 시시각각의 구체적 현실이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오늘 입을 옷, 먹을 음식을 선택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며 어떤 행위를 할 지 선택한다. 선택의 대표 경험은 쇼핑이다. 가성비와 만족도로 귀결되는 온갖 제품들의 수많은 변수들을 비교하고 분석한 후 결제 버튼을 누른다. 쇼핑은 선택을 통해 삶에 즉각적 영향을 주는 행위다. 구매 후기와 상품평은 선택이 자신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한 글이다. 삶을 쇼핑처럼 보는 사람들도 많다. 쇼핑몰의 클릭처럼 크고 작은 선택이 삶을 구성하는 실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선택을 잘하면 결과도 좋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샀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샀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탐탁치 않은 물건을 샀지만 기대와 달리 많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물건은 사용하지는 않지만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지기도 한다. 물건을 지니고 있는 시간, 물건을 사용하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물건과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물건과 내가 심리적으로도 더 이상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다 판단되면 물건을 없앤다.
쇼핑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자주 쓴다는 뜻, 자주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그것이 물건과의 상호작용이다. 쇼핑이란 선택에 의해 특정한 대상과 소유라는 형식의 관계를 맺는 행위다. 쇼핑 이후의 만족도는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 물건과의 상호작용에 달렸다. 자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변수는 아니다. 물건과의 물리적, 심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가가 중요한 변수다. 물건과의 상호작용(물건을 쓰고, 물건을 생각하는 행위)을 통해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물건 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물건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물건과의 기분 좋은 상호작용(만족감)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설레는 기분이 쇼핑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쇼핑을 하다보면 산다는 행위 자체가 쇼핑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쇼핑 행위가 쇼핑의 동기가 되는 상태를 쇼핑 중독이라 부른다. 쇼핑 중독이란 쇼핑하는 행위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상태다. 쇼핑 중독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물건들을 또 사고 또 사느라 쇼핑에 빠져있는 경우와 한 물건을 사기 위해 쇼핑에 빠져있는 경우다. 쇼핑 중독의 판단 기준은 돈과 시간이다. 쇼핑에 쏟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쇼핑 중독이다. 아무리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그걸 사기 위해 몇 일, 몇 주, 몇 달씩 검색하고 검색하는 습관도 쇼핑 중독이다. 무언가의 관심과 행동으로 일상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상태가 중독이기 때문이다.
특정 물건을 사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며 고민하는 행위는 즐겁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스트레스가 된다. 다양한 관점의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점점 더 완벽에 가까운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선택을 위해 시작한 일이 선택을 방해한다. 선택에 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 자체가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주도적 의지라기보다는 미궁으로 향하는 알고리즘처럼 더 나은 물건을 사고 싶다는 마음은 끝없는 정보검색과 고민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나에게 맞는 완벽한 물건을 구입하면 그 물건으로 인해 원하는 걸 이루게 될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최고의 카메라를 구입하면 경탄스런 사진을 찍게 될 것 같고, 최고의 화구를 구입하면 피카소같은 그림을 그릴 것 같고, 최고의 자전거를 구입하면 자전거로 건강과 행복을 얻을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고, 삶은 선택이라는 생각에 더욱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책상을 바꾸고, 노트북을 바꾸고, 사귀는 사람을 바뀌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물건뿐 아니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곳에 가고,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가 삶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선택의 문제다. 일단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삶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택을 위해 고민한다. 이런 태도는 삶 전반에 스며든다. 선택으로 삶을 구성하거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건과 상황을 바꾸면 삶이 달라질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진짜 문제는 선택 이후다. 서로의 선택으로 인해 해피엔딩으로 끝난 감동적 로맨스 영화의 커플은 자막이 다 올라가고 몇 년 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대부분 관심없다. 삶이란 선택 이후에 펼쳐지는 예상치 못한 문제 투성이의 과정들이다. 그 어떤 삶도 선택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삶은 선택 이후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삶은 선택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삶을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과정이다.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가 쇼핑의 이유와 목적이 아니듯, 삶을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학교, 전공, 직업에 대한 고민과 선택이 삶을 결정짓지 않는다. 누군가의 우정과 사랑을 고민하며 계속 유지할 지 그만둘지를 선택하는 것도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 삶을 결정짓는 것은 선택 자체가 아니라, 선택 이후의 일이다. 선택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분투하며 상호작용하는 실존적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다.
특정 물건만 구입하면 삶을 달라질 거라 기대하지만, 그 물건을 구입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내 삶이 잘 풀린 것도 아니고, 그 물건을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삶이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좋은 삶이 펼쳐질거라 생각한다.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많은 이들의 삶을 살펴보면 삶을 바꾸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쁜 삶은 나쁜 선택 탓, 좋은 삶은 좋은 선택 탓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선택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볼 때는 틀렸다. 선택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선택 이전의 삶, 선택 이후의 삶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선택, 혹은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다. 어떤 선택이든 상관없이 나와 대상, 나와 세상과의 상호작용 과정이 삶을 바꾼다. 어떤 사람은 1만원짜리 쇼핑으로 삶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수십억 쇼핑으로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선택이 삶을 바꾼다는 신화를 버리자. 대신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과의 상호작용 과정으로 삶을 바꿔나가는 이야기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