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김진묵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었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집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한국 최초의 째즈평론가였고 20년 넘게 소로와 스콧니어링처럼 살며 영혼으로 음악을 이야기하시는 분이다.
2005년에 그를 처음 만나 시드니 호텔방에서 술을 마시며 음악에 대해 나눈 대화는 내 삶을 관통하는 강렬한 배움이었다. 감동이 많은 삶은 행복한 삶이고 예술은 감동의 영역이다. 어떤 음악이 감동적인 음악인지 물었던 그의 질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쇠락한 강원도 항구의 사람 찾지 않는 허름한 선술집을 운영하는 늙은 여자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낮술을 한 잔 걸치고 텅빈 거리를 바라보며 지난 삶을 생각하며 인생의 마지막 노래처럼 부르는 '목포의 눈물'을 듣는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까?
우연히 가게 앞을 지나던 유학파 음악 교수가 그 노래를 듣고, "칫, 음정, 박자, 가사가 다 틀렸군... 우리 나라는 음악 교육이 문제야..."라고 중얼거린다면.
우연히 그 가게 앞을 지나던 20대 여자가 홀리듯 멈춰서서 노래를 끝까지 듣고도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좋아하셨던 노래인데, 저 분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걸까? 정말 마음을 울리는 노래야...."라고 중얼거린다면. 살면서 오래 동안 그 장면이 떠오른다면.
우리는 음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김진묵선생님은 음악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해 주셨다. 그건 마치 삶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그의 말은 삶에서 피어나는 꽃 같다. 자기 개발의 시대라는 장마철에 피어나는 곰팡이나 버섯처럼 우후죽순 세상을 뒤덮은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한 자기개발의 언어와 다르다.
새벽에 눈을 뜨니, 어젯밤 그가 해 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전기도 없는 강원도 산골에서 오리와 함께 사는데, 새끼 오리들을 연못가로 데리고 가려했단다. 작대기 하나를 쥐고 새끼 오리들을 연못가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단다. 아기 오리들은 자꾸만 길을 벗어나기만 했단다. 한 마리를 똑바로 가게 만들면 다른 한 마리가 옆으로 새고, 그 아기 오리를 또 방향을 잡게 만들면 똑바로 가던 오리가 또 옆길로 새기를 반복했단다.
그렇게 힘겹게 겨우 겨우 연못 근처에 갔단다. 연못 수면 위에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비친 연못을 발견한 아기 오리들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 질주해 연못으로 퐁당퐁당 뛰어들었단다. 그리고 아기 오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놀았다는 이야기다.
아기 오리와 연못 이야기는 육아, 교육, 삶에 대한 은유다. 아이들에게 해 줄 일은 연못가로 데리고 가는 일이다.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더라도 아기 오리들은 때가 되면 연못가로 갈 것이다. 아기 오리들은 연못가에서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 것이다. 어른들이 할 일은 연못을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거나 연못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또한 어른들에게도 신나게 뛰어놀 연못이 필요하다. 어떤 이에게는 음악이, 어떤 이에게는 수학이, 어떤 이에게는 물리학이, 어떤 이에게는 영상과 디자인이 연못이다. 연못에 가기도 전에, 연못에서 노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난 연못이 지긋지긋해!'라고 만드는 교육은 멈추어야 한다.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가만히 놔누면 된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연못을 찾아가는 힘을 가지고 태어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