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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Dec 20. 2022

솜사탕


사원 생활은 삶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의지를 좌절시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만지지도 못했고, 언제 무엇을 먹을지 또 누구와 살고 어느 오두막에서 잘지 선택하지도 못했습니다. 승려가 되면 과거에는 당연한 권리였던 선택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한 수행은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안겨줍니다. 삶이 불확실해질 때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고 앞날을 모를 때도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헛된 노력을 덜 기울이며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믿음과 미래에 덜 집착하고, 삶이 실제로 벌어지는 유일한 장소인 지금 여기에 마음을 여는 과정입니다. 실은 누구나 인간의 삶에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잘 알 것입니다. 이승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희망, 두려움, 가정, 소망, 예상, 의도 등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저도 모르게 꾹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리고, 펼친 손은 삶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 비욘 나티고




6살쯤 되었을까? 어릴 , 솜사탕을 만드는  보았다. 자전거 뒷좌석에 호빵 보관함같은 솜사탕 기계를 싣고 능숙한 솜씨로 휘휘 저으며 솜사탕을 만들어내는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신기한 광경에 도대체 어떻게 솜사탕이 만들어지는지 보려고 까치발로  솜사탕 기계 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솜사탕을 만들려면 설탕, 설탕을 액체로 만들 열, 액체 설탕을 좁은 틈으로 뿜어줄 바람, 온도를 식혀줄 공기가 필요하다. 가늘게 뿜어져 나온 액체 설탕이 공기와 만나 거미줄같이 바뀌면 나무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둥그런 모양을 만들어낸다.


인생은 솜사탕같다. 과거의 기억은 솜사탕의 원재료인 설탕이다. 미래 열망은 설탕을 가열한다. 현재의 행동은 설탕물을 거미물처럼 뿜어내는 바람이다. 액체설탕을 고체의 실로 만들듯 열망으로 뿜어져 나온 인간의 행동은 환경과 만나 삶이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솜사탕같은 삶이 부질없고 허망해 좀 더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단단한 알사탕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자퇴를 하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누나는 수녀가, 형은 신부가 되고 싶었던 걸 보면 타고난 기질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어떤 정보든 누구의 이야기든 뻔하다 여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 여기는 사람. 한국 사회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로 상징된다. 스웨덴 사람이 태국에 출가해 살아온 이야기가 위 책의 제목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 내가 맞고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 때문에 갈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제 아무리 대단한 지식과 경험, 가치와 신념, 권력과 돈도 한 줄기 비가 내리면 사라지는 솜사탕 같다는 걸 정치인부터 깨달으면 좋겠다. 모두 부질없지만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도우며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나마 가치 있는 삶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솜사탕처럼 금방 사라질 인생이라 한탄하지 말고, 엉성하게라도 하나 만들어 멀뚱멀뚱 바라보는 아이에게 공짜 솜사탕을 내미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하루 하루 펼쳐지는 인생은 솜사탕 같다. 느슨함이 생명이다. 꽉 쥐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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