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에 베트남 나트랑을 다녀왔다. 수영을 원없이 실컷 했다. 만족스런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뭔가 허전한 걸 느꼈다. 아이패드가 없었다. 내가 앉은 좌석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급히 공항으로 차를 돌렸다. 타고 온 비행기는 이미 베트남으로 떠났단다. 말로만 듣던 효율과 비용 절감을 위한 퀵턴 비행스케줄의 위력을 생생히 경험했다. 혹시나 싶어 분실물 센터에 물어보니 역시 발견하거나 들어온 것이 없단다. 연락처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행기를 탄 주인공 아이가 애착 인형인 토끼를 비행기에 두고 내리는 이야기인 그림책,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가 떠올랐다. 돌고 돌아 아이에게 돌아온 토끼 인형처럼 내 아이패드도 돌아왔으면 했다. 못찾는다는 마음과 찾기 위한 노력이 부딪혔다. 내가 탄 비행기가 베트남에 도착한 후 다시 한국에 도착했을 다음날 오전에 또 연락을 해보았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도 내 아이패드를 본 적이 없다 했고, 위치 추적도 되지 않았다.
오후에 뭔가를 찾았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내 아이패드였다. 베트남 나트랑 공항에 있다고 했다. 계산상, 주인 잃은 아이패드는 베트남에 다시 갔고,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다음, 다시 베트남에 도착한 후 발견되었다. 내 좌석 오른쪽 팔걸이에 세워둔 체 비행기에서 내렸고, 복도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 도착 4일 뒤에 음료수를 사 들고 공항에 갔다. 조그마한 항공사 사무실 문을 나서며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또한 잃어버린 물건이 다시 내게로 오는 경험을 많이 했다. 분실의 전문가라 그런지, 물건을 잃어버리면 '꼭 찾아야겠다, 찾을 수 있다. 찾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건을 찾기보다 '그것' 없이 살아가는데 익숙해지려고 한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집착을 줄이는 것이 찾음의 가능성을 높여줄 리는 없다. 하지만 빠른 포기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상황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키운다.
아버지는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 집안에 들인 물건은 잘 버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엄마랑 자주 다퉜다. 엄마가 죽고 난 직후, 아버지는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린 듯 했다. 소중히 여기던 것도 웬만하면 버리라 하셨다. "사람도 죽어 사라지는데 그깟 물건이 무슨 대수냐고"했다. 87살 때의 일이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있을 때 물건과 좋은 관계를 맺고, 때가 되면 집착 없이 보내줘야겠다. 무용하게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을 줄이고, 더 이상 내게 필요 없더라도 다른 이에게 여전히 필요할 물건과 관계를 맺어야겠다. 내게 그런 물건 중 하나가 책이다.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면 의미있는 책도 쓰레기가 되고, 쓰레기같은 책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쓰레기로 인한 환경 문제의 본질은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의 상실일지 모른다. 시대를 초월한 의미보다는 시대를 초월한 유효성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고구마 줄기를 더듬어 고구마를 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