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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by 피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저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싫어한다고 여기는 것,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가장 못하는 것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평생 담 쌓고 지내던 것들에게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30대 말부터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고, 40대 초에는 수영을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 콩쿨이나 올림픽에 나갈 생각을 버리니 느리고 서툴러도 즐거웠다. 경영, 비즈니스, 금융도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다. 창업할 생각이나 투자를 할 생각이 없으니 이 역시 재미있었다. 상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경영, 경제, 금융 쪽과는 담 쌓고 산 이유는 학창 시절에 그쪽 공부가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에 흥미도 없고 적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판단하는 나의 잘못+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사람의 잘못>의 결과물인 것 같다.


내게 수학은 새(bird)로 태어난 나에게 물고기처럼 수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도 안되게 어려운 일이었다. 수학 머리가 없는(없다고 믿게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 저주 받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평생 수학으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요즘 수학이 점점 좋아진다. 아름답기까지 하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수학자가 되고 싶다.


뭔가가 자신의 적성과 맞거나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것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스스로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


2. 그것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혹은 지식)이 없기 때문


3. 진짜 적성에 맞지 않거나 그렇지 않기 때문


내 경험으로 보건데, 3의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판단하고, 그런 판단의 편향은 점점 굳어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편향을 점점 굳히며 삶아간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 탐색이든 성장을 위한 자기 개발이든 나와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에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도 문제 해결에 도움 될 것 같다.


나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이끄는 것은 영혼 없이 '좋아요'를 습관적으로 터치하는 손가락 끝의 익숙한 촉감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기꺼이 관심을 가지고 그들로부터 진정 배우려는 넉넉한 마음일지 모른다. ‘싫어요’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은 내 삶을 좀먹는 벌레가 아니라, 내 삶의 기회를 넓히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좋아요’ 속에서 성찰하고, ‘싫어요’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며 ‘좋아요’와 ‘싫어요’가 서로 소통하며 아름답게 공존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게 삶의 궁극적 목적일지 모른다.


관념이 아니라, 실제가 그런 듯 하다. 피아노를 더 배우고 싶고, 수영을 다시 하고 싶고, 수학 이론서를 읽으면 마음이 설레고, 코딩을 하면 행복하다. 모두 과거에 나와 상관없는 것, 의미 없는 것, 싫어한다 믿었던 것들이다. 이질적인 것에 다가가고 그들과 관계 맺음의 변화가 과거보다 나은 나의 길로 이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주관적 의미라는 납작함 때문에 객관적 의미라는 입체감을 놓치는 일은 어리석다. 진짜 의미란 혼자만의 정신 승리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내년부터는 취업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생각해 보니, 할 말을 다한 것이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말과 함께 대안을 행동으로 실천해야겠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싫어요’ 속에 있을 것이다. 남은 삶은 ‘싫어요’와 ‘좋아요’가 손잡고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풍경이길 바란다. 때때로 서로 마주 보며 웃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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