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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by 피라


고등학교 때 '람보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장난기 많은 친구들과 먼저 지하철 승강장으로 간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한 명의 진 사람을 정했다. 지하철이 들어와서 문이 열리면 진 친구가 지하철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 "난 람보다!!"라고 외치고는 "두두두..." 소리를 내며 기관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다시 승강장으로 빠져나오는 놀이다.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등 다양한 지하철 속 승객들의 반응과 승강장에서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친구들의 상호작용이 재미의 백미다. 가끔 연기에 너무 몰입해 문이 닫히기 전까지 빠져 나오지 못한 친구도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난 뒤에는 람보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친구는 승객들의 시선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람보가 사용했던 기관총의 이름은 M60이다. 1958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졌고, 베트남전에서 널리 사용했다.


어제 밤에 그 M60기관총을 쏘는 꿈을 꿨다. 22살 때 춘성 102보충대에 입대했고 21사단 신병교육대로 들어갔다. 양구군 방산면의 한 보병 부대로 배치받았는데, 난 화기 분대였다. 6명으로 이뤄진 화기분대는 두 정의 M60기관총을 담당하는 분대였다. 꼬질대(기관총 총열을 청소하는 긴 쇠막대기) 머리를 맞으며 M60 기관총을 학습했다. 기관총의 제원은 기본이고, 정해진 시간 안에 기관총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을 무한 반복했다. 훈련을 나갈 때는 10.432킬로그램인 기관총과 예비총열을 군장에 올리고 행군했다. 일년에 8,9개월은 산을 타는 전천후 최정예 산악부대였고, 한 번 훈련 나가면 2주씩 산에서 먹고 자며 행군을 해야겠다. 무거운 기관총은 소대원이 번갈아 지고 다녔였지만, 화기 분대 막내인 내가 가장 많이 지고 다녔다.


군대에서 난 총을 많이 쏘았다. 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소총 영점 조절 할때나 실탄 사격을 하는 것으로 안다. 1년에 10발 쏘는 정도다. 제대 8개월 앞두고 GOP에 투입하게 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6개월 동안 못 나온다. M60기관총 사수였던 나는 GOP소초의 비행기 격추용 캐러바 50사수가 되어야 했다. 투입 전 겨울에 집중 사격 훈련을 했다. M60 실탄 사격을 원없이 했고, 캐러버 50 실탄 사격 훈련도 했다. GOP에서 근무할때는 매주 소총 실탄 400발(200발인지 400발인지 가물거린다.)을 사격을 한 후 탄피를 OP에 보냈다. GOP근무자는 유사시 실탄 사격이 필수이므로 항상 연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FM으로 소대원이 골고루 사격하기가 귀찮아서 병장들 몇 명이서 그냥 연사로 당긴 후 탄피를 올려 보낼 때도 있었다.


휴전선 철책의 GOP근무자의 임무는 간첩 침투로 뚫리면 아침에 시체로 발견되는 것이고, 전쟁이 나면 최초이자 마지막 임무인 '교전 후 딱 5분만 버티는 것'이다. 그 다음 임무는 없다. 실탄 75발에 수류탄과 조명탄을 탄포에 넣고 경계 근무한다. 탄창 하나에 30발까지 들어가는데, 25발씩 넣는다. 너무 꽉 채우면 스프링 등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5발을 연사로 당기면 4초 전후면 끝난다. 점사로 아껴 쏘아도 20초 넘기지 못한다. 전쟁이 나서 적이 앞에서 우굴거리는데 한 발씩 사격할 강심장 병사가 있을 지 싶다. 한 발씩 조준사격해도 25발은 길어야 1분이면 동난다. 교전 시 75발의 실탄으로 5분을 버티는 것은 미숫가루 한 봉지로 7주일 동안 아껴 먹어야 하는 상황과 같다. 탄약고가 있지만 불시에 교전을 하게 되면 멀게는 40분 거리까지 누군가가 탄약을 들고 뛰어간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탄약수도 이동 중에 사격을 해야 할 텐데, 목표 지점까지 갔을 때 실탄이 얼마나 남을 지도 의문이다.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항상 휴대하는 75발의 실탄을 알아서 쓰고 그 다음은 모른다'다. 내가 근무하던 지역은 시나리오상 군인의 99.99%가 사망하는 지역이었다. 실탄 조건으로 볼 때 교전 후 5분을 버티는 것은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한 건 '탄약 재보급'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식이 해결되지 않으면 공부도 일도 못하듯, 보급이 되지 않으면 전쟁을 할 수 없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이다. 보급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밥과 총알(폭탄, 미사일류를 포함)일 것인데, 그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단연 총알이다. 전쟁이 났을 때 GOP병사들이 점사로 아껴아껴 사격하면 75발로 5분을 겨우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적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한 군인이 몇 천 발, 몇 만발의 실탄을 휴대할 수 없다. 실탄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잘 보급하느냐는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다. 전쟁이 나면 남한의 모든 실탄을 소진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30일이라는 말도 있고, 보름이라는 말도 있다. 75발을 쏘는데 걸리는 시간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제각각이니 한국 군대의 실탄이 몇 일 뒤에 떨어질 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을 거다. 남한 땅에 실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실탄을 외국에서 보급받는 개념이 탄약 재보급이다. 전쟁으로 세상이 아수라장이 난 상태에서 탄약 재보급이 시나리오대로 될 지도 미지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지지부진하게 저 모양인지 보급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탄약이 무한정 보급되어도 문제가 있다. 사람이 쉬지 않고 24시간 일만 할 수 없듯 총도 쉬어야 한다. 총을 계속해서 쏘면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휘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 총을 버려야 한다. 특히 기관총은 조심해야 한다. 기관총은 연사/점사로 쏘기 때문에 금방 총열이 달아오른다. 그래서 예비총열을 항상 휴대해서 1,000발 정도 쏘면 총열을 교환한다. 총열을 교대로 식히며 쏘아야 하는 것이다. M60은 분당 200발 사격 시(기관총을 1분에 200발 쏘는 건 밥 알을 세면서 밥먹는 것과 같다.) 2분마다 총열을 갈아야 한다. 교전이 일어나면 총열 갈다가 볼 일 다 본다.


IT로 무장한 최첨단 무기가 각축전을 벌이는 현대전은 게임과 같아서 재래식 무기는 의미 없다 여길 수도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무기가 고도화될수록 상황과 조건에 따른 변수도 커진다. 만약 오늘 오후에 전쟁이 난다면, 개미 한 마리도 죽이기 싫어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 나는 어떤 무기를 선택할까? 배터리, 조정기, 충전기 등까지 챙겨야 하고 외부 충격에 약한 최첨단 드론과 탑재형 소형 폭탄보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기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안정적인 무기를 고를 것이다. 더하여 내 신체의 일부처럼 익숙하게 사용가능한 무기를 선택할 것이다. K2소총이나 M60기관총이 내겐 그런 무기다. 총이 있다고 총을 쏠 수 있는 건 아니다. 총알이 몇 백발 있다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탄약을 날라야 하고, 총열을 갈아주어야 하고, 식량도 보급해야 하고, 온갖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전시 체제다. 전쟁을 위한 그 많은 일을 누가 할 것인가? 국민이다. 부모 잘못 만나 이민을 가지 못해 군인이 된 아들, 택배기사, 화물노동자는 물론 나처럼 전쟁을 혐오하는 사람도 총을 들고 온갖 전쟁 뒤치닥거리를 해야 할 지 모른다. 전쟁은 휘날리는 승리의 깃발과 같은 관념이 아니라 시궁창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 먹으며 공포 때문애 이웃의 목덜미에 칼을 쑤셔 넣을 수도 있는 처절하고 비극적 현실이다.


군대에서 소총을 연사로 갈겨본 경험도 없을 대통령이 '선제타격'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걸 보면 참담하다. 전쟁이라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전쟁을 겪은 경험이 없다. 군대에서 총을 쏘아본 경험 하나만으로 봐도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가능하면이 아니다. 절대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일, 그게 대통령의 첫 번째 사명이다.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바쳐서까지 지켜야 할 고결한 가치라는 것은 허상이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생명이 가장 귀하다. 그런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자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뭔가 나쁜 일을 꾸밀 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낭만에 빠질 때가 아닙니다." 출격 명령을 내리고 버튼이나 누르는 일이 전쟁이라 여기는 것이 진짜 위험한 낭만적 태도다.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우크라이나를 보면 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다. 상식을 갖추지 않은 자들이 함부로 상식을 외치는 건 자유지만, 편협한 비상식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된다. 편협성과 시대적 절망이 만나면 전체주의가 된다. 독일이 그랬다. 우리 사회에 히틀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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