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스마트폰을 건드리고 쓰다듬는 동작은 거의 예배와 맞먹는 몸짓이며, 그 몸짓은 세계와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정보는 신속한 쓰다듬기를 통해 내쳐진다. 반면에 내 마음에 드는 내용은 양 손가락 벌림을 통해 확대된다. 나는 세계를 완전히 손아귀에 쥐고 있다. 세계는 전적으로 나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자기관련을 강화한다. 스마트폰 화면의 여기저기를 건드리면서 나는 세계를 나의 욕구에 종속시킨다. 세계는 총체적 처분 가능성이라는 디지털 가상을 띠고 나에게 나타난다.
롤랑 바트르에 따르면 촉각은 '모든 감각 가운데 탈신비화 작용이 가장 강한 감각이다. 반대로 시각은 가장 마법적인 감각이다.'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움은 건드릴 수 없다. 그 아름다움은 거리를 명령한다. 숭고한 것 앞에서 우리는 경외심을 품고 뒷걸음질한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시각조차도 촉각 강박에 종속되어 마법적 면모를 잃는다. 시각이 경탄을 상실한다. 거리를 없애는 시각, 소비하는 시각은 촉각을 닮아가고 세계의 신성함을 모독한다. 그 시각 앞에서 세계는 단지 처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 스마트폰 화면 곳곳을 건드리는 손가락은 모든 것을 소비 가능하게 만든다. 타인의 다름은 강탈되고, 타인조차도 소비 가능하게 된다.
- 사물의 소멸, 한병철
스마트폰 화면을 흑백을 설정한 지 2년 째다. 처음에는 눈 건강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 화면을 흑백으로 바꾸고 나서 신기한 걸 발견했다. 간혹 꼭 필요할 때 화면을 컬러로 바꿀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스마트폰의 색감이 너무나 인공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 과장되고 왜곡된 컬러로 느껴졌다. 느낌이 아니라 실제가 그러했다. 스마트폰을 항상 컬러로 볼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스마트폰 속 색깔과 실제 현실의 색깔은 많은 차이가 있고, 스마트폰 컬러에 익숙한 눈은 현실 속 색깔도 스마트폰 컬러처럼 여기기 때문에 화면과 현실의 색깔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컬러를 접하지 못하고 현실 속 색깔만 접하다가 스마트폰 컬러를 보면 그 차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가끔 왜 스마트폰 화면이 흑백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현실의 색깔을 더 생생하고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라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삶의 팔할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