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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19. 2023

강의


고질병이 있다. 강의를 하면 내용을 꽉꽉 채운다.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말도 하고 싶고, 이 주제도 다루고 싶고, 저 주제도 다루고 싶고,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유용한 정보의 전달보다는 정보를 의미 있게 해석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고, 노하우보다는 원리를 알려 주고 싶고,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강의안은 잡동사니가 되고 산으로 가기도 한다. 


내용을 뺀다고 빼도 여전히 빡빡하다. 세부적 내용을 모두 PPT에 설명하지 않고, 키워드 중심으로만 만들다 보니 현장 변수가 많다. 시간 조절에 실패한다. 항상 시간에 쫓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뭐 하나라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나의 문제를 알기에 강의에 여백을 많이 두고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진행해야겠다는 결심하지만, 막상 잘 되지 않는다. 잘 되지 않는데, 머리는 아는데 실행이 잘 되지 않는다. 빡빡하게 준비한 강의는 일방적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틈이 없다. 


좋은 강의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 해석하지만, 그건 변명이다. 상호작용, 상호작용이라는 말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내가 그런 점이 부족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타인에게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습관으로 만들 일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의 시간에서만 상호작용의 경험을 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상호작용의 원리로 작동하도록 바꿀 일이다. 


난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너희들은 그렇게 살아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아..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강의도 제대로 하고, 삶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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