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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20. 2023

직무 역량


강의 중 질문에 대답하다, 인용하고 싶은 문구가 떠올랐다. 나의 말보다 누군가의 말이 더 강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략 의미만 전달했다. 찾아보니 내가 ‘생명’이라는 단어를 ‘복’으로 풀었다. 연결은 되지만 다른 의미다.


하고 싶었던 말은 하이데거의 현관문에 적혀 있다던 문장이었다.

(하이데거에 대한 호불호가 있지만, 그의 삶보다는 글의 뜻만으로 본…)


‘온 정성으로 네 충심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다.


성경 구절이라 한다. 한글 새번역 성경의 번역은,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로 되어 있단다.


하이데거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네 마음을 지킨다’는 것을 ‘온 정성으로 네 충심을 지킨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독일어 원문을 충실하게 한글로 옮겼다 한다.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을 읽고 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조금씩 아껴 읽고 있다. 그의 책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오래 또 읽고 싶은 책이다. AI가 번역한 듯한 철학서, 뜻도 제대로 모르고 기계처럼 번역된 수많은 철학서와 다르다. 10쯤 알면서 9 혹은 10이상을 이야기하는 책과 다르다. 100을 알면서 정성들여 1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자기개발은 자칫 자아과잉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기업도 개인도 브랜드가 되는 시대라 불특정 다수의 관심이 돈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마음에 안 든다고 거부할수도 무작정 수용할수도 없는 흐름이다. 


브랜드란 존재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이란 마음의 일관된 상태다. 마음을 지킨다는 말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 같지만, 함정이 있다. 편향에 빠져 헤어나오지 말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각이 편향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의미없다. 신이 아닌 이상 편향적이다. 신도 편향적일지 모른다. 이슬람과 오랜 전쟁을 하고 마녀사냥을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것을 보면 편향적이지 않으면 인간의 신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생각, 신념, 감정 때문에 편향이라는 습기에 축축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을 지킨다는 말보다는 ‘정성으로 충심을 지킨다’는 표현이 훨씬 좋다. 충심은 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이다. 다른 말로 진실한 마음이다. 진실이란 변하지 않음이 아니다. 진실은 변하지 않음이 아니라, 변함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충심이란 자신과 타인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속이지 않는 마음은 삶의 걸음마와 같다. 배움과 성장의 자기개발은 물론 영리 목적의 비즈니스도 속이지 않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뜻하는 바를 이룬다.


되고 싶은 상태와 그러지 못한 상태 사이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이상과 현실, 욕망과 실제 사이의 수많은 간극이 삶의 문제다. 삶과 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간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감정에 밀착해서 오직 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보다 나를 타인처럼 관찰하며 간극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참된 마음과 정성은 나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지만 나에 매몰되지 않고 나로부터 조금 벗어나 나와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참된 마음을 볼 수 있다. 참된 마음을 느끼면 정성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런 상태에서 일하고 삶을 살면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의미, 가치, 재미, 행복을 느낀다.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없다고 쉬 포기하는 건 어리석다. 24시간 중에 입으로 음식을 먹는 시간 정도도 충분하다. 음식으로 에너지를 얻어 하루를 살아가듯, 무언가를 충심(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으로 대하는 시간을 30분만 가져도 그 에너지로 한 나절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충심을 느낄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직무 역량의 본질이다. 물론 삶에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과 삶은 서로 사귀듯 연결되어야 한다. 사귀다보면 다투기도 한다. 일이든 삶이든 모든 관계는 약간의 책임이 필요할 것 같다. 책임감이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려는 마음이다. 상호작용은 긍정성과 부정성이 공존한다. 0과 1의 조합으로 의미 있는 다양한 신호를 만들어내어 디지털 세계를 창조하듯. 지속적 상호작용을 통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 그게 삶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심 한 방울도 필요하다. 인내심으로 끌고 가는 삶이 아니라, 충심에서 우러나는 재미가 이끄는 삶의 밍밍함을 없애려면 짜디짠 인내심이라는 소금이 약간 필요하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생명이라 통칭한다. 정성으로 충심을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라니.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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