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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29. 2023

숙제


1978년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한글을 아는 아이들은 한 반에 몇 명 없었다. 나도 8살 때부터 ‘ㄱ,ㄴ,ㄷ…’을 처음 배웠다. 국어 숙제를 매일 해야했다. 글을 자유롭게 읽게 된 뒤, 2학년때부터의 국어 숙제는 똑같았다. 진도에 따라 국어 교과서에 새로 나오는 낱말의 찾아 그 뜻을 적고, 비슷한 말, 반대말을 공책에 적는 일이었다.    


집에는 숙제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컴퓨터도, 구글도 없었다. 대신 전과라는 무척 두꺼운 올인원 참고서가 있었다. 전과에는 국어 교과서 중심으로 진도에 맞춰 내주는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말, 비슷한 말, 반대말이 친절하게 짠~하고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전과라는 만병통치 솔류션을 6학년때까지 구경도 못했다. 부모가 전과를 사 줄 돈도 없어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대단한 교육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었지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찢어질 듯 가난함 속에서 4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돌볼 돈을 벌기 위해 부모가 전쟁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난 큰 형과의 나이 차이가 12살, 바로 위 형과 7살의 나이 차이가 난다. 집에는 형과 누나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아동용 국어 사전이 하나 있었다. 10센티 정도의 두꺼운 사전이었지만, 큼직한 글자로 이루어진 아동용 사전이라 수록된 단어가 많지 않았다. 난 그 사전 하나로 6학년 때까지 국어숙제를 했다. 2학년 때는 찾는 단어의 90%정도 있었지만 3학년 때부터 사전에 없는 단어가 점점 많아졌다. 4학년쯤 되니 10단어를 찾으면 절반 정도만 사전에 있는 단어였다. 그 부실한 사전에 의지해 새낱말 뜻풀이, 비슷한 말, 반대말 숙제를 4년 동안 해냈다.


방법은 간단했다. 새낱말의 뜻풀이를 스스로 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전체 문장, 전후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쥐어짜듯 단어의 뜻을 추정했다. 지금까지 배운 모든 개념, 모든 단어, 모든 경험과 생각을 쥐어짜듯 총동원해 어렴풋한 단어의 뜻을 글자로 표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건 마치 땔깜을 손으로 쥐어짜서 목재에 담긴 수분을 한 숟가락 얻는 일과 비슷했다. 사전의 모든 단어와 뜻풀이를 스캔하며 문장 속의 같은 말, 비슷한 말을 찾아내고 그것들의 희미한 뜻을 연결짓고 조합해 뜻풀이를 하고, 비슷한 말, 반대말 숙제를 했다.   


내가 한 숙제에는 엉터리 내용도 있었을테지만, 4년 동안 선생님에게 야단을 들은 적은 없었다. 때로는 무관심했거나, 때로는 넘어갈만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모든 감각, 경험, 생각을 총동원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그 어렴풋한 개념을 쥐어짜며 글로 표현했던 어릴 적 경험을 복기한 건 최근의 일이다. 학창시절 내내 국어는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좋았던 것, 책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어릴 적 외롭고 힘들게 국어 숙제를 했던 경험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다. 숙제의 과정이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뜀틀처럼 처음에는 무조건 해내야 하는 과제였지만 익숙해지면서 나름의 재미도 느꼈다. 배움과 깨달음 성취감 같은 재미였지 싶다. 인정에 대한 강박만 없다면 뭔가를 꼴똘히 생각해서 나름의 결과물로 만드는 건 뭐든 재미있다. 숙제를 어렵게 하면서 삶과 문제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의 기초가 형성되었을지도 모르겠다. 32살에 글을 써야겠다 결심한 것, 지난 세월 동안 쓰는 일에 관심 가진 것, 앞으로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숙제를 하며 형성된 듯 하다. 나는 여전히 어릴적 풍경처럼 쪽방에 엎드려 고심하며 숙제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것이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고, 싫은 것이 항상 부정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삶은 간단치 않고 복잡해 보인다. 풍족함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고, 궁핍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궁핍과 풍족, 좋음과 싫음, 부정과 긍정을 초월해 나를 이롭게 하는 지혜를 서로 나누는 일이 컨설팅의 뜻이라 본다. 컨설팅은 넓은 의미의 교육이다. 교육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생각의 나눔, 행동의 실천에 가깝다.


나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교육도 컨설팅도 아니다. 일방 통행에는 상호작용이나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상대의 생각으로 들어가 상대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말하는 것에만 그치면 누군가를 굳이 직간접적으로 대면할 필요가 없다. 상대와 내가 진실하게 만나 서로의 존재로 인한 회오리가 생겨야 한다. 토네이도의 원리처럼 서로 부딪혀 긍정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려면 일정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 조건을 스스로 갖출 수 있게 도와주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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