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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Mar 31. 2023

MZ세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책을 조금씩 옮기고 있다. 어제는 욕심을 부렸다. 한 가방 가득 책을 넣고 팔목에 건 다음, 또 20권 정도를 쌓아 안고 옆 건물 사무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씩 무게 중심이 쏠렸는지 안은 책 위 두 권이 삐져나와 오른 팔뚝에 걸려 떨어지려 했다. 두 손 한 가득 책을 안은 상태니 걸음만 멈추고 책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몸을 비틀며 애썼다.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당황했던 그 짧은 찰나, 맞은 편에서 점심을 먹고 오던 한 무리의 청년들 중 한 명이 빛의 속도로 달려와 책을 집어 바로 놓아 주었다.


출퇴근길에 뉴스를 들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이 MZ세대다. MZ세대의 특징, 그들의 생각, 그들의 취향과 관심,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MZ세대를 모르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변화하는 세상, 변화하는 사고방식, 변화하는 삶에 관한 정보는 유용하지만 이 모든 것이 MZ세대들의 일인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점점 피로감을 느낀다.


MZ세대들은 이렇다, 저렇다며 자신을 규정하는 말들을 들으며 공감하는 MZ세대들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유치원 한 반의 아이들도 제각각 다른 특징이 있는데, 삶이 수십년 쌓이면 쌍둥이라도 하늘과 땅 차이의 서로 다른 스펙트럼이 생긴다. 같은 세대라도 다양한 생각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MZ세대라도 전형적인 586세대같은 이가 있고, 70대 노인도 MZ세대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인간의 뇌는 유형화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을 좋아한다.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유형화는 때때로 필요하고 효율적 방법이긴 일반화의 오류같은 여러 문제가 있다. ’유대인들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사회 악이다.‘라는 생각도 유형화의 대표적 사례다. 유형화와 바람직하지 못한 편향적 사고가 만나면 인간의 사유가 멈추고 비극이 생긴다. 굳이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말하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여자는 이렇다, 남자는 이렇다, 페미니즘은 이렇다, 대구경북은 이렇다, 전라도는 이렇다, 부자는 이렇다, 고졸은 이렇다, 서울대생은 이렇다처럼 타인을 납작하게 판단한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일반화 오류에 갇힌 숱한 육아 정보, 학습 정보, 교육 정보, 경영 정보, 자기계발의 정보가 세상을 뒤덮는다. 자신의 경험은 소중하고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삶을 바라볼 때도 과학적 접근을 했으면 좋겠다. 과학적 접근이란 변수의 통제를 통한 재현가능성이다. 사회와 삶의 모든 변수를 파악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기계발에서 말하는 누군가 이렇게 했으니 너희들도 그처럼 하면 된다라는 주장, 즉 확신에 찬 재현가능성 주장은 엉터리다. 솔직한 태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태도만이 개인 삶과 사회를 개선한다.


어제 책 들고 가는 나를 도와준 MZ세대 청년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이해하는 요즘 젊은이와 달라 보였다. 어쩌면 내가 착각하고 살아온 것일지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타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제 일 이후로 MZ세대들은 이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반화 오류는 곤란하다. 타인을 도와주는 MZ세대 사례를 9천개쯤 확보하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역시 일반화 오류다. 하나의 관점, 하나의 사실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영원히 안 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한 번의 젓가락질 시도에 좌절했다고 다시는 젓가락을 쓰지 않는 아이가 되면 안 된다. 착하다는 칭찬을 받고 난 뒤 영원히 그 상태에 머물러도 안된다. 자기 부정도 자기긍정도 모두 해롭다. 희망도 절망도 곤란하다. 현재를 과거와 연결지어 엉성하지만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는 일, 미래까지 규정하며 편리한 결론을 도출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9번의 실패를 하더라도 10번째 시도를 개별 사건으로 접근해야 한다. 삶의 의미는 끝없는 시도, 끝없는 행위 그 자체에 놓여 있다. 삶 아닌 것으로 인해 삶이 물들게 놔두면 안 된다.


몇 가지 사회적 조건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쉽게 유형화해 똑같이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야겠다. 좀 살았다는  생각, 경험과 지식을 좀 접했다는 생각으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인생의 내리막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지난 경험은 현재의 생각을 수정하는 재료로 사용해야지, 다가올 미래를 규정하는 붕어빵 틀로 사용하면 안 되겠다. '흑인은 범죄를 잘 저지른다.'와 같은 뿌리 깊은 유형화의 편견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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