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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적아빠 Feb 27. 2024

그림 천재는, 어쩌다 뒤처지는 아이가 되었을까

한 아이를 알고 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림을 참 잘 그렸다. 


예쁘게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도 잘 그리기 때문에 잘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아주 독창적인 그림을 참 잘 그렸다. 그래서 난 그 아이의 그림이 늘 기대가 되고는 했었다. 어린이집에서 가끔 나를 만날 때면 자신의 그림을 곧 잘 보여주곤 했었는데(우리 아이와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다), 그때마다 아이가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참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는 우리 아이보다 그 아이의 그림이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을 나 역시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더 이상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나를 보면 방긋 웃지도 않았다. 난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지만, 아이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물어보지는 못했었다(엄마에게 물어봤자 아이와는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음으로).


그러던 어느 날, 하교 시간에 그 아이의 엄마가 다른 엄마들에게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하교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것은 나만의 즐거움이다~ (-,.-)ㅋ).

그 엄마는 딸아이가 수업에 뒤쳐지고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 여러 학원에 등록해서 보내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매일 가는 학원만 해도 2개는 됐었고, 어느 날은 3개인 것 같았다. 아직 1학년인데?

'어쩐지..., 애를 도통 볼 수가 없더라니...'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고 자주 함께 놀고는 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교 후에 그 아이를 도통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이 아이뿐만이 아니라, 주위에서도 이런 친구들이 상당수 많이 존재한다. 우리 첫째의 친구들에서부터 넷째의 친구들까지 쭈~욱.

학교에 다니는 순간,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점점 사라지는 한국의 매직~. (-,.-);;




어느 날, 그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했을 때(그 아이의 엄마가 이날 늦게 와서 나와 내 아이가 잠깐 같이 있어줬다), 그 아이에게 요즘에도 그림을 자주 그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이는 매일 학원에 가느라 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시나,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는 '학원 끝나고 그리면 되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말을 쉽게 하는 경우다. 

왜냐하면, 학원을 보내는 가정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 또는 이곳저곳을 다녀오고 나면, 과연 몇 시인지를. 집에 와서 정리를 하고,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하고, 학습지(문제집)등이라도 풀고 나서 다시 저녁을 먹고, 씻고, 뭐 이것저것 등을 하다 보면 벌써 잘 시간이다.(-,.-);;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놀게 된다면, 여유시간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고서 아예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 아이는 당연히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학교를 다닐 때에도 학교를 다녀와 정리를 하고, 간식을 먹고, 숙제와 이것저것 등을 한 다음, 좀 놀다가 바로 그림을 그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이답게 다시 조금 더 놀다가 자기 전에 잠깐 그림을 그렸다. 하루에 많이는 못 그려도 1시간은 늘 그렸다. 필 받아서 많이 그렸던 날에는 다른 걸 하며 놀지도 않고, 3시간이 넘도록 그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3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아이와 그 아이가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같은 반이 되고 나서, 어린이집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서로에게 그림을 그려준 뒤에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다. 난 정말 오랜만에 그 아이의 그림을 보게 되었다. 기대에 부풀어 그 아이의 그림을 본 순간, 왠지 모를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예전에 보았던, 그런 느낌의 그림이 아니네...'


우리 아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나에게 물었다.

"OO는 나보다 더 잘 그렸었는데... 지금은 아니네."

"그래서, 그런 얘기를 OO에게도 했어?"

"아니.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가져왔지."

"잘했어. 다음에 또 그릴 기회가 생기면, 요즘은 그림 자주 안 그리냐고 한 번 물어보기만 해. 그리고 이제 그림 그리는 거 안 좋아하냐고도 한 번 물어보고."


내가 오랜만에 본 그 아이의 그림은, 그냥 그림을 그린 것, 단지 그뿐이었다.




난 경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한다.

'윈-윈'이라는 좋은 방법도 있는데, 굳이 경쟁을 부추기고, 남을 짓밟고, 제쳐두고 올라서서 내가 승자가 되려 하는 그런 발상들은 애초부터 잘못된 방식이자 악랄한 방법들일 뿐이고, 그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분명히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 아니, 진짜로 더 큰 이익을 보는 녀석들은 따로 있다. 당신은 단지 조금의 이익을 보는 것뿐이다. ]


난 오히려 그 아이가 우리 아이보다 그림을 더 잘 그렸을 때, 우리 아이에게 더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비교 대상보다는 서로에게 좋은 협력 관계이자 좋은 동료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어차피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은 세상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 수많은 아이들을 전부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그 아이의 그림을 다시 보는 표정에서, 친한 친구이자, 친한 동료를 잃은 듯한 아쉬움이 엿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자극제가 하나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뭐~. 

운동선수들도 본인처럼 열심히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또는 상대 선수들을 보면서, 더욱 자극을 받아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는 한다. 입시로 따져본다면, 내신등급보다는 공부를 하는 분위기 때문에 강남으로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우리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미술 학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주위에서 그 친구 말고는 그 어떤 아이도 우리 아이를 그림으로 자극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건 자랑이 아니다. 오히려 비극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대다수 아이들이, 입시라는 길로만 가고 있다는 얘기이니까.




내 아이가 유일하게 인정했었던, 그리고 내가 우리 아이보다 더 기대를 했었던 그 그림 천재 아이는, 어렸을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입시를 준비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그런 아이들 속에서, 그저 평범한 아이로 전락해 버리는 평가를 받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학원을 더 다니는 강행군 속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문제를 더 잘 풀어내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문제 푸는 방법들을 익히고 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 아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난, 아이의 엄마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교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잠시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OO의 그림을 보고 자기보다 잘 그린다고 했었다고.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독특하게 참 잘 그렸었다고, 요즘에도 곧 잘 그리냐고 물어봤었다(친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에, 엄마들도 대충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말을 들은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렇다. 아이의 엄마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 엄마가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내고 있는지만 봐도, 대충은 알 수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나 신념, 방식, 방법 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들이 있는 거니까.

다만 그게,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잘 파악한 후에 아이가 정말로 원하기 때문에 도움과 지원을 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들이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가스라이팅을 하며, 지원을 해주는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선을 그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평균적으로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그런 삶을 위해서, 내가 진심으로 도와주고 있는지 한 번 생각을 해보자는 얘기다.


난 당연히, 그러기 위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더 낳았다.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고.

오늘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지원해 주며, 곁에서 함께 응원해 주고 있다.

그래야, 나도 후회가 없을 것 같고,

그래야, 아이들 또한 미련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미 뭘 하든지, 그 지나친 욕심들만 버린다면,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환경들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게 바로, '선진국의 특혜라면 특혜'다. 그 지나친 욕심들을 버리지 못해서 문제지만...


나는 내 아이를, 입시에 뒤 처진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보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즐기면서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을 뿐이다. 지금 당장은, 몇 년 후에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 있는 그 아이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더 돋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런 삶을 이미 겪어본 우리 학부모들은,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작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내 아이에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줄 수 있고, 행복이 뭔지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부모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이 즐겁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 사진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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