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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적아빠 Apr 12. 2024

놀라웠던, 초졸 검정고시 시험장의 풍경

얼마 전,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시험이 있었다. 당연히 홈스쿨링을 하는 우리 아이도 함께 시험을 치렀다.


그날,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험을 치렀다.

고령의 어르신들도 많이 계셨고, 상당히 어려 보이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제일 어린 나이는 아마도 시험기준이 되는 만 12세의 아이들일 것이다. 그 외에도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도 있었고, 20대, 30대, 40대, 50대 등 다양한 연령대의 수험생들이 있었다.


이런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한 곳에 모이게 되었는지는 각자만의 사정들이 하나씩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봐할 것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 같은 경우엔 혼자서 시험장에 온 아이는 한 명도 없는 듯이 보였다. 거의 가족들이 함께 와서 아이들을 응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 시험장에 와서 시험을 보는데, 온 가족이 저렇게 웃으면서 응원을 해주고 있다니...


저런 모습들을 보고서, 지금도 어떤 이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아니냐고 반문을 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초졸 검정고시부터 시험을 치를 거라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들이 다 그랬으니까. 무려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까지도 있었고, 지금까지도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있다.(-ㅅ-)ㅋ


하지만, 그날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없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날, 그 시험장까지 올리는 없을 테니까. 당연히 관심도 없을뿐더러, 지금도 전혀 다른 생각들과 가치관들을 갖고서 아이들을 대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가족들은 내 아이에게 어떤 것이 더 좋은 환경인지, 어떤 상황이 더 좋은 상황인지를 수많은 고민들과 생각을 한 끝에 어느새 그 자리에 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면서 그렇게 아이를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있었던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다거나,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수험생은 20대의 청년처럼 보였는데, 가족들이 함께 와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또 어떤 수험생은 40대의 여성처럼 보였는데 형제, 자매들이 와서 함께 응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수험생은 고령의 할머니셨는데, 온 가족이(심지어 손자, 손녀까지) 와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흐뭇함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었다. 오랜만에 '진정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늘 느끼는 거지만, 그곳에 가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그렇게 만나볼 수가 있게 된다. 


그들은 낙오자나, 소외된 자, 함께 가지 못하고 뒤떨어진 자들의 가족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내 가족과 모든 걸 함께 하고자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그렇게 남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모험과 도전 정신'이 투철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그들은 그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당당해 보였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고, 하다못해 서로가 밝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곧 시험을 볼 내 아이도 웃고 있었고, 그걸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던 우리들도 함께 웃고 있었다.

우리들은 왜, 다들 그렇게 웃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 시험을 치를 내 아이가,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었던 내 가족들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고마웠기 때문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지금도 해가 바뀔수록, 검정고시를 치르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굳이 초졸 검정고시부터 치르지 않고, 졸업을 한 후에 중졸 검정고시부터 치러도 되는데도, 초졸 검정고시부터 치르는 아이들도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미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 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럴 만도 하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을 하고 있으니까.

'초등학교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과정들을 준비하는 단계이자, 습관화시키는 단계다.'라고.


이제는 뭐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미 내가 학생이었던 그때부터, 수십 년째 듣고 있는 레퍼토리라서. 

어차피 깊게 심어진 사고방식과 가치관들은 그리 쉬이 바뀌지를 않는다. 아마 다시 태어나더라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봤자 그 문화와 분위기들이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면 말이다. 사람은 환경과 분위기에 쉽게 섞이기 마련이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도 사회와 학교의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서 이미 자퇴를 마음먹었거나 행동으로 옮겨버린, 그렇게라도 다른 길을 가고자 마음을 먹은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다.


난 그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가 틀렸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틀렸다.
그러니, 너희가 믿고 있는 그 길로 한 번 가 봐.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보다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너희들 만의 성공적인 삶과 행복을 찾으라고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 혼자서 시작하려면 힘들 것이다. 어릴 때는 적어도 부모님이라도 도와줘야 그나마 수월할 테니까. 검정고시 시험장에서 봤던 그 가족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바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것도 없다.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지금처럼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설득을 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고자 하는 목표와 꿈을 가진 자녀를 매몰차게 모른 척하는 부모는 거의 없으니까. 

부모님들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의 대부분은 자녀들이 확실한 목표도 없고, 꼭 이루고 싶은 꿈도 없고,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들도 보이지 않으면서, 지금의 생활들을 거부하기만 하고 방황들을 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부모가 아니라, 학교를 그만두고자 하는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너무나도 몰라주는 경우나 다름이 없다. 검정고시 시험장에서 만났던 가족들은 시험을 보는 자녀들을 한결같이 다들 응원했었다. 그들은 왜, 자퇴 시험을 치르는 아이를 모른 척하지 않고서 함께 응원하며 도와줬을까?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잘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난 지금도 학교를 자퇴하고서 검정고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내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끝까지 해낼 때까지 계속해서 함께 도와줄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은 하고 싶은 목표가 있고, 꿈이 있고, 지금도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조금씩 꾸준하게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내 아이들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찾아가고 있으니까.


그날, 검정고시 시험장에 모여있던 수많은 부모들도 아마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그런 눈빛들을 갖고 있었고, 그렇게 당당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검정고시를 치르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도우며, 함께 응원해 주는 가족들은 그렇게 나름대로의 교육관과 가치관들이 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다. 

더 이상 변화도 없는 공교육을 그대로 답습해 나아가는 세대들은 앞으로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검정고시 시험장에 갈 때마다, 함께 온 부모님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느낌이 온다. 지금의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그저 따라가기만 하다가 일이 발생한 이후에나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 것들을, 그들은 앞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20대가 될 때까지 진행되는, 입시만을 위한 공교육은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얼마 안 가 곧 붕괴될 것이다. 지금도 그 결과들로 인한 안 좋은 상황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중이니까.

준비된 자들만이 새로운 시대를 기꺼이 맞이하며 적응하며 잘 지낸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나있는 사실들이다.

지금도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르는 아이들과 그걸 도와주는 부모님들이 한심해 보이는가?


아니면, 대학입시를 위해서 20살이 될 때까지, 다양한 다른 경험들은 전무한 채, 오로지 학교, 학원, 시험공부 등에 올인을 해가며 한 달에도 수십, 수백 만원의 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갖다 받치고 있고, 대학에 가서도 각종 지출 항목들과 학자금 대출 등의 빚을 져 갚아가면서, 대학만큼은 꼭 졸업을 시키고자 지금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부모들이 더 나아 보이는가?


마지막으로 묻고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그래서, 대학을 나오면, 지금도 그 대학만 나온다면,


자녀들이 드디어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 사진출처 : pixabay ]

[ 14화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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