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링스 Sep 21. 2019

폐허 속 민들레들의
평범한 하루들

어 퍼펙트 데이|2016|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내전 이후 전쟁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폐허에서 활동하는  NGO 단체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느껴질 무거움과 불편한 진실, 눈물과 고통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영화엔 여섯 명의 인물들과 각자의 평범한 일상과 작은 문제들만 남아있다.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사회와 부딪히고, 서로 싸우고, 두려움에 멈추고, 날씨에 기분이 바뀌기도 하는 작은 일반인들이다. 일상들은 작고 소소하고 또 웃기고 슬프고 평범하다.

주요 이야기는 우물에 빠진 시체를 건져 올린 NGO들이 ‘밧줄’을 구하기 위한 짧은 여정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NGO 직원들은 UN의 혹시 모를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에 당장 주민들의 식수인 우물을 치우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저 축구공을 잃어버린 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보다 보면 시트콤 같기도 하고 너무 소소해서 이거 뭐야? 싶다가도 중간중간 그 속에는 시대적 피해자들의 아픔과 조직의 무책임이나 비효율에 대한 비판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영화의 주요 갈등들은 해결되지 않거나, 해결된다 해도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우물 속 시체는 결국 빼내지 못하지만 나중에 비가 와 자연스레 주민들이 꺼내게 된다. 주인공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UN과의 관계도 개선되지 않았고, NGO 파견을 멈추고 돌아가려던 인물들도 계속 현장에 남아 있게 된다. 각자 겪고 있는 연애 문제나 아이가 부모를 찾은 문제들도 명확하게 마무리되진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완벽한 하루다.

완벽한 하루란 말도 안 되게 행복한 날들로 가득 찬 그런 비정상적인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며 날씨라는 운에 기대기도 하고 연애에 있어선 비겁하기도 한 아주 일상적인 그런 평범한 날 그 자체로서 완전하고 완벽하고 하루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들의 하루는 특별한 어느 하루가 아닌 언제나 존재하는 어느 하루이기에 the perfect day가 아니라 a perfect day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운 사람, 차가운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