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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Oct 13. 2019

온실 속 화초의 맑고 아픈 첫사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2017

순수함 자체의 엘리오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에게 모든 영화의 공을 바쳐할 듯싶다. 그의 미세한 손짓과 몸짓, 눈빛은 불안하고 설레고 상처 입었다. 그걸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고고학자인 아버지가 발견하는 고대 조각이 표현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엘리오에게서 느낀다.

그에 반해 올리버는 생각보다 매력의 깊이가 얕다. 높았던 비중에 비해 뒤로 가면 갈수록 그냥 지나가는 바람 같은 사람일 뿐이었다. 진지한 목소리와 말투 외엔 사실 그렇게 진지했을까 싶다. 그러나 그렇기에 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단 엘리오의 순수한 사랑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강도 높게 저려오는 마음을 선사했다면, 이 영화는 첫사랑의 순수한 주인공이 안타까운 정도.

다만 단순한 첫사랑과 상처를 넘어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음악과 의상이 어시스트한 엘리오다. 모든 옷들의 색과 핏들이 어설프면서도 아름다웠고, 중간중간 클래식으로 정리되는 음악들은 엘리오를, 올리버를, 마르치아를, 영화를 미적으로 완성시켰다.

또 하나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이 모든 사랑에 외부 방해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고통 없는 금수저이기에, 엄마와 아빠가 각각 자신들의 방식으로 아들의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을 눈감아주기에 우리 엘리오는 순전히 자신의 마음에만 빠져있다. 그렇게 더 아름다워지는 엘리오.

마지막 엘리오에게 아빠가 자전적 이야기를 섞어 위로해 주는 장면은 정말 뜻깊다. 동성애, 사랑 이런 단어를 교묘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아들의 감정과 선택을 지지하고, 또 벗어날 수 있는 통로도 열어준다. 심지어 엄마가 알았냐는 말에 모른다고 하질 않나, 자기도 그럴 뻔한 적이 있었으나 실패했다며 부럽다 하질 않나, 정말 어른이다.

다만 영화 로마를 보고 나서 본 것은 좀 마이너스 요소인 듯. 부잣집 가정부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다가, 가정부가 챙겨주는 밥 먹고 휴양지에서 사랑에 빠진 금수저를 보자니, 은연중에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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